[부시 최대 위기] 미국 언론이 예상하는 탈출 전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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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집권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 주말 '리크 게이트'를 수사해온 특별검사는 백악관 핵심참모인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을 기소했다. 하루 전 대법관 후보였던 해리엇 마이어스가 반대여론에 밀려 자진사퇴했다. 이라크전쟁에서 희생된 미군의 숫자가 2000명을 넘어서는 시점에 한꺼번에 악재가 덮쳤다.

미국 주요 언론들은 부시 대통령이 과연 어떻게 대처할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다. 미 정가에선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은 홍역을 치른다"는 속설이 있다. 그러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빌 클린턴 대통령은 효과적인 대응으로 재임 후반기 높은 지지율을 보였다.

◆ 기소당한 네오콘 핵심=패트릭 피츠제럴드 특별검사는 28일 루이스 리비 부통령 비서실장을 위증.공무집행 방해 등 다섯 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유죄가 인정될 경우 최대 30년형이 가능한 중범죄다. 리비 실장은 사임했다. 같은 혐의를 받아온 '부시의 브레인' 칼 로브 백악관 부비서실장은 기소되지 않았다. 그러나 특별검사는 "로브는 여전히 조사 대상"이라고 밝혔다. 아직 로브에 대한 수사가 끝나지 않았으며, 앞으로 추가 기소될 수 있다는 경고다. 리비는 2003년 6월 딕 체니 부통령으로부터 "이라크 핵무기 관련 정보가 엉터리라고 비판한 조셉 윌슨 전 이라크 대리대사의 부인 발레리 플레임이 중앙정보국(CIA) 비밀요원"이란 얘기를 듣고 이를 기자들에게 누설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리비는 조사 과정에서 "발레리 플레임 CIA 요원이라는 사실을 기자들에게 들었다"고 거짓 증언했다.

◆ 부시의 탈출 전략=뉴욕 타임스 등 미국 언론들이 전망하는 부시의 대응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지지층 결집. 이를 위해 보수파들의 지지를 받을 대법관 후보를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 강제사퇴한 마이어스 대법관 후보의 경우 자격 미달과 소신 부족으로 보수파들의 반발을 샀다. 부시 대통령은 새뮤얼 앨리토 2세(항소법원 판사)를 후보로 지명할 것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29일 보도했다. 앨리토 2세는 현 대법관 가운데 가장 보수적인 안토닌 스칼리아와 성향이 비슷하며 '스칼리아'란 별명으로 유명하다.

둘째는 인사 쇄신이다. 공화당 전략가 빈 웨버는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계기"라고 말했다. 레이건 전 대통령은 이란-콘트라 스캔들이 터지자 백악관 비서실장을 경질하는 인사로 분위기 쇄신에 성공했다. 인사를 할 경우 이라크전을 이끌어 오면서 비난을 많이 받아온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의 거취가 주목된다. 하지만 부시는 사람을 바꾸는 걸 싫어해 대규모 인사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셋째는 이미지 변화다. 부시는 9.11테러 직후 '강한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성공했다. 이제 '일하는 대통령'으로의 이미지 변신이 예상된다. 다음달 부산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참가하고 중국.일본과 동남아 등을 순방하면서 외교무대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부각하고자 노력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리크 게이트'로 기소된 리비
네오콘 핵심 …'선제 공격론'등 구상

리크 게이트로 기소된 루이스 리비(55) 미 부통령 비서실장은 네오콘(신보수)의 핵심이다. 부시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일단은 기소를 면한 칼 보브보다는 덜 알려졌다. 하지만 로브와 함께 부시 행정부의 '이데올로기 브레인' 역할을 해온 실세다.

네오콘으로서 그의 역할은 199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딕 체니 부통령과 폴 울포위츠 현 세계은행 총재로 이어지는 네오콘의 핵심에 뛰어들었다. 체니는 당시 아버지 부시 행정부의 국방장관이었고, 울포위츠는 체니의 매파 브레인으로 예일대 제자였던 리비를 스카우트했다. 울포위츠와 리비는 냉전 이후 시대 국방정책을 입안했다.

이때 만들어진 핵심개념이 '선제공격론'이다. 대량살상무기(WMD)를 개발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선제공격을 할 수 있다는 일방주의다. 대량살상무기를 만들려는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라크를 침공해야 한다는 구체적 방안도 제시했다.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입안 단계에서 철회됐다. 그러다 아들 부시 대통령에 의해 현실화됐다.

이 논리에 근거해 97년 설립된 싱크탱크 '새로운 미국의 세기를 위한 프로젝트'(PNAC)에는 체니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도 참여했다. PNAC는 2000년 발표한 '미국 방위 재건보고서'에서 ▶미국을 적대시하는 국가의 정권 교체 ▶미국 이익에 어긋나는 국제협약 폐기 또는 탈퇴 등을 건의했다. 부시 행정부의 외교.군사정책 골격이다.

리비는 '체니의 체니'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체니 부통령이 부시 대통령에게 하는 역할을 리비가 체니에게 하고 있다는 의미다. 리비가 위증을 한 것 역시 체니를 보호하기 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리비 기소는 곧 체니의 위기로 주목된다.

한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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