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덕분에 돈 벌었어요” 수퍼 개미 기부에 “덕분에 더 열심히” 직원들이 달라졌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3호 01면

부품소재 기업인 쌍용머티리얼 생산팀 박장희(50) 가공반장은 2012년 6월 22일에 회사 주식 353주(당일 주가 2200원·당시 기준 총 77만6600원)를 받았다. 회사가 준 것도 자신이 산 것도 아니다. 개인투자자 한세희(39)씨가 증여한 것이다. 한씨는 당시 보유했던 이 회사 주식 220만 주 가운데 20만 주를 회사에 내놨다. 10만 주는 사내복지기금으로, 10만 주는 직원들에게 줬다. 전체 임직원 283명이 똑같이 주식을 나눴다. 한씨는 2009년 말부터 당시까지 이 회사 주식 220여만 주를 사들였다. 평균 매입단가는 1135원. 회사에 주식 증여를 결정한 즈음엔 주당 2500원 내외였으니 2년 만에 130% 넘는 수익을 낸 것이다. 한씨는 “직원들이 열심히 일한 결과로 주가가 뛴 만큼 이익을 다 가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한세희씨, 쌍용머티리얼 직원에게 주식 20만 주 증여 그후 2년

한씨 같은 개인투자자가 투자 이익을 해당 회사의 직원에게 증여한 것은 이례적이다. ‘주주는 이익을 극대화하려 한다’는 주주자본주의적 통념에도 어긋난다. 주주와 종업원의 이익은 상충하는 경향이 있다. 주주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면 종업원의 임금이나 복리후생 수준을 높일 수 없다.

한씨는 오히려 자신의 이익을 종업원들과 나눴다. 일반적으로 대주주 오너와 종업원 사이의 연대의식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일반 투자자와 종업원 간의 공생이 과연 가능할지, 가능하다면 기업 경영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뚜렷이 밝혀진 게 없었다. 지금까지는 단기 이익을 중시하는 투자자의 행태가 기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인식이 일반적이었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케이는 2012년 투자자들의 ‘쇼터미즘(short-termism·단기실적주의)’이 결국 기업의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한씨의 주식 공여는 새로운 실험이었다.

그로부터 2년8개월. 이 실험은 어떤 결과를 낳았을까. 이 기간 중 쌍용머티리얼 임직원에 대한 의식조사를 한 서울대 한상진(70) 명예교수는 ‘투자 이익을 해당 회사 종업원과 공유한 투자자의 시도는 기업과 종업원에게 긍정적 역할을 한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는 투자자 한씨의 아버지다. 한씨가 주식을 증여하기 직전인 2012년 5월의 1차 조사에서 ‘주주와 직원의 공생’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응답자는 23.2%였다. 2년 뒤인 지난해 4월 조사에서 이 비율은 50.4%로 높아졌다. 주식 증여로 ‘회사에 대한 자부심이 커졌다’ ‘열심히 일하는 계기가 됐다’ 등 긍정적인 반응을 한 임직원은 10명 중 7명(69.3%)에 달했다. 동국대 유창조(경영학) 교수는 “한씨의 증여는 국내외에서 사례를 찾기 힘든 ‘이상 행동’인데 주주와 종업원이 경쟁자가 아닌 협력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말했다.

실험 결과가 다 좋은 건 아니다. 직원에 대한 주주의 배려가 인식·태도에 긍정적인 영향을 줬지만 이게 생산성·실적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증거는 없다. 쌍용머티리얼은 증여가 있었던 2012년 매출 985억원, 영업이익 70억원을 거뒀다. 2013년에는 각각 980억원과 63억원, 지난해에는 1005억원과 57억원을 기록했다. 글로벌 경기침체에서도 그나마 좋은 성과를 냈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지만 주식 증여가 얼마나 회사의 생산성과 경영실적 향상에 기여했는지는 알기 어렵다.

회사의 주가 역시 2012년 3월부터 현재까지 2000~3000원대를 오르내리고 있다. 이 회사 황성률 인사총무 팀장은 “증여가 임직원 태도에 긍정적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하지만 매출ㆍ수익은 시장수요ㆍ환율 같은 대외 변수에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한 교수도 “이번 연구는 주주·종업원이 함께 잘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하나의 실험이며 앞으로 심화 연구가 필요하다”고 했다.

한씨는 증여를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투자이익을 해당 회사의 임직원과 나누면 투자자와 직원은 이해상충 관계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연대하는 관계로 발전해 기업의 가치를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관계기사 8p

염태정·박태희 기자 yonnie@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