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렘린 허락없인 못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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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KAL기의 격추는 소련이 주장하는것처럼 극동지역 사령관이 독단적으로 수행한것이 아니라 모스크바의 군부지도자들과 협의를 거쳐 이루어진 것이며 그동기는 서방세계를 「협박」하려는데 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소련의 망명정치학자가 주장했다. 소련과학아카데미의 군축문제를 전담하며 서방세계에 역사·정치학자로서 널리 알려졌던 「미카엘· 볼렌스키」교수는 서독의 디 벨트에 기고한글에서 그렇게 밝히고 있다. 77년 소련시민권을 박탈당해 서방으로 망명한 「볼렌스키」교수는 현재 서독뮌헨대의 현대소련문제연구소 소장직을 맡고있다. 다음은 「볼렌스키」교수의 기고내용이다.
흔히들 말하기는 소련의 국경수비는 소련군사력의 일부를 담당하고있는 KGB휘하의 국경수비대라고들 한다.
그러나 영공의 안전은 소련공군이 책임지고 있으며 그 최종명령계통은 소련국방성에 귀속돼있다.
그렇다면 KAL기 격추명령은 소련이 주장하는것처럼 소련방공사렁부의 극동사령관인 「고보로프」에 의해 결정된것일까?
물론 그가 직접 명령을 내린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명령이 모스크바의 허락없이 이루어졌을 가능성은 조금도 없다.
KAL기를 격추하기까지 2시간이상 걸렸던것은 모스크바로 부터의 동의를 얻어내기 위한것이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격추할 태세를 갖추고 있었다.
KAL점보기를 요격했던 8대의 전투기들이 강제착륙시키려했다면 아주 간단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시도는 없었다.
이런 상황은 소련공군사령관 「콜두노프」원수와 KGB의 국경수비대 사령관 「마트로소프」대장에게 보고됐음이 틀림없고 「콜두노프」는 KGB의 동의아래 명령을 내렸을것이다.
문제는 소련의 정치지도부가 이번 사건에대해 사전에 얼마나 알고 있었느냐하는 것이다.
「브레즈네프」시대 였다면 이런 의문은 없었을 것이다. 「콜두노프」는 적어도 공산당 중앙위 서기의 동의를 받아야 했을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다르다. 군부는 어느정도 독자성을 갖고있다.
크렘린 지도부는 두파로 갈려있다.
소위 「안드로포프」일파와 「체르넨코」가 이끄는 「브레즈네프」일파다.
「안드로포프」는 정치국에서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권력기반은 KGB와 군부의 느슨한 연합세력에 바탕을 두고있다.
이런 권력관계때문에 정치국으로부터의 경고나 질책을 두려워하지않고 일을 저지르게할수있도록돼있다.
이번 사건을 두고 소련의 도덕을 얘기할 필요는 없다. 「레니」은 이미 소련의 근본적인 도덕은 공산주의를 강화하기위한 투쟁이며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영원한 도덕같은 것은 어린애 장난같은 것이라고 말한바 있다.
그렇더라도 KAL기의격추같은 사건은 소련정책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당연히 제기된다. 세계적인 여론은 바로 그런사실을 나타내주고 있다.
『지금 당장은 서방측이 악을 쓰지만 얼마가지 않아 양보(굴복)하게 된다』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KAL기 격추명령을내린 장본인이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유럽쪽도 그 계산에 포함된다.
SS-20 미사일이나 아프가니스탄 침공, 제3세계의 분쟁을 부채질하고 있는것과 똑같은 동기에서 아시아의 한약소국가의 민간항공기를 격추시킨 것은 협박을 위한 것이다.
히스테리컬한공포분위기를 조성해놓고 서방으로 하여금 양보하도록 강요하겠다는것이 소련의 정책인 것이다. 【본=김동수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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