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마르게 울어도 진혼안될 269명의 넋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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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망연자실할 수 밖엔 없는 요즈음!
무슨 생각이 똑똑하게 떠오르며 무슨 방도가 머리에 더오르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평화스럽게 자유롭게 길을 가던 사람이 느닷없이 달려든 흉한에게 망치로 세게 얻어맞은 기분일까? 아니면 흉한에게 맞아 실신해 버린 상태가 유족들의 상태일까? 하고 나는 상상해본다.
우리의 이웃이, 가족이, 친지가 너무 억울하고 심한 충격을 입었으니, 우리인들 무엇부터 어떻게 위로를 하며 정신을 차리도록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한없이 한없이 빠져 들어가기만 하는 깊은 심연과도 같은 그런 슬픔과 분노속에서는 몸과 정신 모두를 제대로 가누기가 힘들 것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우리의 엄연한 현실로 다가와 있는것을!
이제 옷깃을 여미고, 눈물을 참으며 하나하나 냉정하고도 맑게, 무슨 방도를 생각해 보아야겠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함께 사랑하는 사람을 따라 죽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살아서 무엇인가 갚음을 해야하고, 따져 보아야하고, 돌보아야하며, 보다 큰 눈으로 세상을 또 보아야 하니까 말이다.
사실 지난 7월초순부터 우리는 너무 많이 울어왔었다.
단, 한가지도 나무랄데 없이 갖추고 있는, 개인적으로 보아서는 최소한 울일이 없는 사람들도 포함해서 우리는 헤어졌던 이산가족들이 만나는 장면을 보고 또 보고, 지나간 날 우리들이 겪었던 슬픔도 함께 떠올리며 울어왔던 것이다.
이러다가는 정말 눈물샘도 말라버릴 정도로 이산가족의 만남은 우리를 울게 했었다.
그러나 그 만남을 보면서 울던 울음과는 전혀 다른 울음을 우리는 또 울어야했다.
이백예순아홉! 이백예순아홉! 시체도 없고, 흔적도 없이 망망대해의 공중에서 산화해버린 사람의 숫자가 이백예순아홉이라니 !
합동위령제의 중계방송을 보면서 우리는 다시 한번 어처구니 없는 울음을 삼켜야만 했다.
어찌할 것인가? 목이 터져라고 외치고, 울부짖고, 냉혹함과 잔인함과 뻔뻔스러움을 다그치고 울부짖는 저 함성이, 저 잔혹의 무리들에게 전달이 될것인가?
전달이 안되면 어쩔것인가? 이럴수도 저럴수도 없지 않은가?
다만 자유의 하늘에 대고, 울부짖을 수 밖에 없다.
자유와 평화가 숨쉬는 하늘에 대고, 피맺힌 분노와 슬픔을 토해서, 그 하늘 위를 감도는 바람이라도 저 철의 장막속으로 전해주게 될까?
그렇지못하더라도 우리는 외쳐댈 수 밖에 없다.
계속해서 사력을 다해 할 수 있는데까지, 이 억울함과 이 분노를 전염시켜 철을 녹이고 비인간적인 잔인함을 녹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는 금방 울다가, 금방 웃어버리다가, 금방 잊어버리다가, 금방 감사하는 얍삭하고 철없는 민족으로 살아서는 안되겠다. 이제는 정말 탈바꿈도 크게 해야겠다.
지금까지도 끈질기게 이어져 온 우리의 피와 혼줄을, 이제는 호락호락하게 밖으로 번져나와 들여다 보이게 해서도 안되겠다.
절치부심하면서 갚음을 닦고 갈고, 뚝심을 기르고, 내성을 길러가야겠다.
지그시 참고 견디면서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면서 또 다른 차원의 우리민족사를 전개해 나가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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