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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 특파원들 KAL기 사건 종합분석-국제텔렉스좌담|안드로포프와 소 군부 불편한 관계 심화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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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장=KAL기 참변은 소련이 사건발생 엿새만인 6일 격추 사실을 공식적으로 시인함으로써 새로운 국면에 들어가게 되었읍니다. 앞으로의 관심은 소련이 스스로 저지른 참사에 대한 사과와 보상등을 어떻게 할것인가, 그리고 미국을 비롯한 서방여러국가들의 대소대응책이나 이번사건이 전반적인 동서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것인가 하는 문제일 것입니다.
우선 6일 발표된 「레이건」미대통령의 보복조치에 대한 서방국들의 동조가능성부터 타진해 볼까요.
▲신=일본정부의 대소보복방침은 「나까소네」(중증근강홍)수상, 「고또오다」(후등전정청)관방장관의 기자회견내용에서 명백히 나타났듯이 일본의 행동을 결정하는 것은 국제사회의 정의와 질서가 아니라 소련과 미국의 태도, 그리고 일본의 국익이라는 3가지 변수입니다.

<막후교섭 기미없어>
그런만큼 일본이 확고하고 단호한 보복조치를 취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지요. 소련여객기에 대한 규제문제도 소극적일수 밖에 없읍니다.
▲장=「레이건」대통령이 밝힌 것 외에 각국이 나름대로 취할 수 있는 보복조치는 어떤것이 있을 수 있을까요. 미국무성은 4일과 5일 한국·일본과 나토회원국 대사들을 조치, 「레이거」대통령이 제시한 보복조치에 동조해 줄 것을 요청했읍니다.
그러나 올림픽경기 보이코트를 시도하다가 서구의 분열만 노출시킨 전례를 의식해서인지 아니면 이번 사건에「보복을 위한 보복」은 않겠다는 원칙 때문인지 강력히 막후교섭을 하는 기미가 없읍니다.
▲이=정부차원에서는 소련을 응징하는 구체적인 대책을 마련하고 있지는 못해도 민간 및 정당차원에서는 몇가지 대소항의 행동이 나왔읍니다.
5∼6일 열린 영노조(TUC)총회는 전통적인 친소입장에서 벗어나 강력하게 소련을 규탄하는 성명을 채택하고 이미 초청된 주영소대사를 비롯, 3명의 소련대표를 참석지 못하게 하자는 주장이 강하게 나오기도 했읍니다.
▲신=소련 또한 집중되는 국제여론 앞에 격추 사실만은 인정했으나 영공침범등을 트집잡아 책임은 미국쪽에 모두 떠다 밀어버렸지요.
북해도대학 슬라브연구센터의「기무라」(목촌범)교수는 『소련이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나라인만큼 사건처리가 시간을 끌것』이며 얼마나 단호한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소련측의 대응도 달라질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유해등은 인도가능>
군사평론가 「무라까미」(촌상훈)씨는 소련이 영공을 침범한 쪽이 나쁘다고 주장해 배상금지불은 거부할 것임에 틀림없으나 유해나 기체파편등은 인도상이나 소유권상의 견지에서 미·일을 통해 당사국에 인도할 것으로 내다보았읍니다.
현대소련사회연구가인 「하까마다」(고전무수)청산학원대교수 또한 타스통신이 『인명의 손실에 관해 소련지도부의 정중한 유감의 뜻을 표명한다』고 말한 점을 들어 회수한 유해는 반드시 반환할 것이라고 전망했읍니다.
소련정부가 공식성명에서 정중한 애도를 한점을 들어 최소한의 배상을 할지도 모른다는 희망적인 견해도 나오고 있읍니다.
▲주=사건이 터진후 소련은 처음엔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다가 KAL기가 스파이활동을 했다고 했고, 그다음엔 미국의 RC-135기로 오인했다는 등 일관된 얘기률 못했던 것으로 보아 소련도 자체내부에서 적지않이 곤욕을 치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됩니다.
세계여론앞에 소련도 결국 어느수준까지는 굴복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는데 그것이 어떤방식으로 나타날지는 예측 할수 없어요.
만약 이번 사건이 일부 서방측 관측대로 「안드로포프」와 군부와의 갈등에서 빚어진 것이라면 소련내부에서의 권력갈등이 표출될 것으로 보입니다.
▲신=KAL기가 무엇때문에 자기항로를 이탈, 사고지점을 비행했느냐는 풀 수없는 수수께끼로 남아있읍니다.
지금까지 파일러트의 조종미스, INS(관성항법장치)의 고장, 혹은 프로그래ALD 미스, 스파이 행위를 목적으로한 고의의 영공침범, 하이재킹설, 요인연행설, 스파이망명설, 연료절약을위한 항로이탈설 등 온갖 추측이 나오고 있지만 어느 것도 설득력을 갖고 있지 못합니다.

<미소 관계 본질불변>
▲장=격추된 KAL기 비행상공부근에 RC-135첩보기가 있었다는 것이 묘한 여운을 남기고있어요. 미국정부는 이 사실을 자발적으로 밝힌 것이 아니어서 처음에는 기자들이 많은 의혹을 품었읍니다.
백악관측은 지난4일 의회지도자들을 불러 소련조종사의 대화 테이프를 들려줬는데 이자리에 있었던 하원 민주당 원내총무「짐·라이트」의원이 잘못듣고 그 대화속에 KAL기를 RC-l35라고 지칭하더라고 기자들에게 말했던 것입니다.
KAL기 격추를 시인한 소련은 앞으로 계속 KAL기를 RC-135로 오인했다고 주장할 것이 틀림없는 것 같은데….
▲신=일본정부의 한 관계자는 미국이 최근 군사기밀인 RC-135의 작전행동의 일부를 밝히면서까지 오인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국제적 비난을 뒤집어 쓰고 있는 「안드로포프」정권을 도와주어 INF(중거리핵전력)삭감교섭등이 유산되는것을 막자는 고도의 정치적 배려가 배경에 깔려있는 것으로 해석했읍니다.
「안드로포프」정권을 지나치게 궁지에 모는경우 소련내 군부를 중심한 강경파의 발언권이 커져 모처럼 이룩된 미소접근 무드를 완전히 깨뜨려버릴 우려가 있기 때문에 이를 막겠다는 속셈이 작용하고 있다는 얘깁니다.
▲장=KAL기사건으로 동서관계는 적어도 표면상으로는 거친 설전이 당분간 계속되겠지만 「레이건」대통령이 대응조치를 발표함에 있어서 양국관계의 본질에 해당되는 부분은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큰변화가 없을 것으로 봅니다.

<「악의 제국」과 공존>
그러나 미소간에 밀월시대가 온다고는 볼 수 없으며「레이건」대통령은 이 사건전에 이미 소련은『악의 제국』이란 발언을 했었읍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 관리들이 자주 내세우는 또 하나의 말은 『미국과 소련은 한 지구상에 살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밉지만 공존하지 않을수 없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에따라 앞으로 「레이건」의 대소정책은 「악의 제국」이란 그의 인식과「지구상의 공존자」란 인식가운데를 왔다갔다 하게 될 것입니다.
▲이=이번사건은 무엇보다 소련의 상식을 의심스럽게 만든 사건인 만큼 소련에 대한 불안감이 높아지고 있으며 소련군부의 독주에 의한 우발전쟁의 우려를 높여 준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미소관계가 악화되리라고는 보기 어렵습니다.
79년12윌 아프가니스탄 침공으로 악화된 미소관계는 최근 핵군축에 대한 세계적인 여론과 국내외 압력으로 속도가 느리기는 하나 서서히 해빙되는 과정에 있으며 양축이 모두 관계악화를 막아야 한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요. 그러나 소련의 태도여하에 따라서는 쌍방의 대결무드가 더 고조될 가능성도 충분합니다.
▲장=KAL기사건이 장기적으론 핵협정에 별영향이 없겠지만 단기적으로는 분위기가 냉랭해 질것으로 봅니다. 최근 소련측이 핵협상에 내놓은 제의를 미국측은 이사건이 나기전까지는 긍정적으로 받아 들였습니다.
그러나 그 제의를 놓고 양측간에 어떤 타결을 볼 가능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이사건의 여파로 그 시기는 미루어질 것이 틀림없읍니다.
다른한편으로 이 사건으로 대소핵협상에 임하는 미국의 입장이 크게 강화되었다고 할 수있지요.
의회에서 MX미사일 생산을 반대해 온 세력은 태도를 바꾸어 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아졌고 퍼싱Ⅱ와 크루즈 미사일의 유럽 배치에 반대해 온 유럽의 평화세력들의 입김도 약화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프랑스의 소련문제 전문가「엘레느·카레르·당코스」씨는 이번 사건이 제네바회담에서 내심 군비확장을 노리는 모스크바측에 유리한 변수가 될 수도 있다는 견해를 갖고 있기도 합니다.

<군축협상 난항예상>
그는 1966년이후 소련 당국이 언제나 군부의 압력을 대서방 협상에 이용해왔다고 지적하고 이번 경우도 같은 논법으로 나올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같은 전망은 KAL기피격사건이 유럽 배치 미사일과 관련한「안드로포프」의 제의(SS-20 1백62기만 유럽에 배치하고 나머지는 파괴하겠다는)가 있은지 l주일 뒤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KAL기사건이 크렘린안의 매파와 비둘기파간의 권력투쟁에서 빚어진 것이라고 할때 가능하다는 설명입니다.
얼핏 소련군수뇌부가「안드로포프」의 제의에 불만이 있을 걸로 추정이 가나 사실은 군부와 정지권력과의 합작가능성이 많다는 말입니다.
▲이=제네바군축협상은 KAL기사건으로 대단히 어려운 지경에 빠질 것으로 보고 있어요. 회담자체는 예정대로 열렸지만 분위기는 어떤 결실을 기대하기엔 너무 차가와졌읍니다.
「대처」수상은 본래 대소강경론자이고 또 소련을 불신하고 있는 터 였는데 이번 사건으로 대소자세는 더욱 경화됐지요. 국내적으로는 미국미사일의 영국배치에 반대하는 반핵주의자들의 입장이 약화되는 결과를 가져왔읍니다.
▲주=이사건은 결국 강대국 정치의 비리와 냉혹함을 다시 한번 엿보인 것으로 밖에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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