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6 재선거로 본 민심] 박 대표 다음 수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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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27일 10·26 재선거에서 승리한 후보들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뒤 웃고 있다. 왼쪽부터 유승민 당선자, 박 대표, 정진섭·임해규 당선자. 울산 북구 윤두환 당선자는 안개로 비행기가 결항해 참석하지 못했다. 조용철 기자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의 표정이 밝아졌다. 재선거 완승 다음날인 27일 박 대표는 국회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대정부질문을 지켜보는 등 일상으로 돌아갔다. 선거 직전까지 '구국 투쟁'을 호소하던 모습과는 다르다. 한 곳에서만 졌어도 벼랑 끝에 설 뻔했던 박 대표다. 이날도 박 대표는 상임운영위 회의에서 "나라 흔들기에 대해 전 지역 단체와 연계해 대응하겠다"며 정체성 문제를 거듭 거론하기는 했다. 그러나 "국가 정체성 이슈를 정리하는 수순"이라는 게 측근들의 설명이다.

재선거 승리는 박 대표에게 '퇴로'를 열어준 측면이 있다. 박 대표의 '구국 투쟁'에 당내에서조차 '무리'라는 반응이 있었기 때문이다. 재선거 완승은 여유를 갖게 해줬고, 자연스러운 의제 전환도 가능해졌다.

따라서 박 대표의 다음 행보가 이념 투쟁이 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정부.여당 쪽에서 '수사지휘권 발동' 같이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정체성 논란은 잦아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당에서 쉽사리 '국가보안법 폐지'와 같은 싸움을 걸지 못할 것이라 판단하는 것 같다.

한나라당이 대신 꺼내든 카드는 '감세 투쟁'이다. 이번 선거 역시 민심은 "먹고사는 문제에 집중해 달라"는 것이라는 게 한나라당의 인식이다. 한나라당이 내건 '세금 폭탄'주장이 표심을 움직이는 데 많은 영향을 미쳤다는 자체 분석이다. 박 대표는 이날 의회의 승인 없이 과세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긴 영국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까지 인용하며 감세 의지를 강조했다. 한나라당 지도부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를 상임위화해 정부 예산을 철저히 들여다보겠다고 천명한 것도 감세 투쟁과 같은 맥락이다.

이와 함께 박 대표는 당내 정지작업에도 본격적으로 나설 전망이다. 맹형규 정책위의장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 나서기 위해 사퇴 의사를 밝히는 등 당직개편 요인도 생겼다.

결국 박 대표는 외부에는 다시 한번 '민생'을 강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내부에선 대선 후보 자리를 놓고 벌어질 '결전'에 대비한 정지작업에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강주안 기자 <jooan@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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