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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이 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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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신종훈은 계약 위반으로 국제복싱협회로부터 자격정지 징계를 받았다. 하지만 리우 올림픽을 향한 의지를 불태우며 주먹을 가다듬고 있다. [인천=오종택 기자]

4일 인천 문학경기장 복싱훈련장.

 ‘한국 복싱의 간판’ 신종훈(26·인천시청)은 땀을 비오듯 흘리며 샌드백을 두들기고 있었다. 그는 지난해 10월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라이트플라이급(49㎏ 이하) 금메달을 목에 걸며 복싱 종목 최우수선수로 선정됐다. 하지만 불과 한 달 뒤 그는 국제복싱협회(AIBA)로부터 잠정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11월 1일 열린 APB(AIBA Pro Boxing) 대회에 불참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복싱을 그만둬야 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방황하던 그는 새해 첫날부터 다시 글러브를 꼈다. 징계가 언제 풀릴지 모르지만 내년 리우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나가겠다는 꿈은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신종훈은 지난해 11월 18일 AIBA로부터 잠정적으로 어떠한 AIBA 경기에도 참가할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중국에서 열린 APB 대회에 불참하고 같은 기간 열린 전국체전에 출전했다는 이유였다. APB는 AIBA가 아마추어 유망주들의 프로복싱 유출을 막기 위해 만든 대회다. APB는 상금이 걸려 있는 프로 형식이지만 WBA(세계복싱협회)나 WBC(세계복싱평의회)에서 활동하는 프로 선수들과 달리 올림픽과 세계선수권에 나갈 수 있다.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딴 뒤 태극기를 든 신종훈. [중앙포토]

 대한복싱협회는 신종훈의 전국체전 출전을 만류하고 APB에 나갈 것을 권유했지만 소용없었다. 신종훈은 “2012년에 계약을 했지만 대회가 열리지 않았다. 이번 대회는 정식 계약을 하지 않았기에 전국체전에 출전해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복싱협회는 “중국에 가서 기권을 해도 좋으니 일단 가자”고 설득했으나 그는 끝내 체전에 나갔고, 우승했다.

 AIBA는 신종훈의 행동을 계약 위반으로 해석했다. 본인이 인지하지 못했지만 정식 계약을 마친 상태였기 때문이다. 신종훈은 “지난해 5월 AIBA 관계자가 국가대표팀 전지훈련지인 독일로 찾아와 영문으로 된 서류에 사인할 것을 요청했다. 어떤 내용인지 몰라 당시 AIBA에 있는 한국인 직원과 통화를 했다. ‘나중에 폐기할 수도 있으니 사인해도 무방하다’고 해 사인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신종훈의 사인은 유효했다. 계약 위반 사실이 명백한 탓에 협회도 도울 방법이 없었다.

 신종훈은 네 식구가 10평짜리 집에서 살 정도로 넉넉하지 않은 가정에서 자랐다. 청소년 시절 방황하던 그는 복싱을 통해 마음을 잡았고, 19살 때 태극마크를 달았다. 2011년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땄고, 지난해 한국에 12년만의 복싱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안겼다. 쾌활한 성격 덕분에 대표팀의 분위기 메이커이기도 했다. 그가 징계를 받은 건 한국 복싱에도 큰 타격이다.

 실의에 빠진 신종훈은 태릉선수촌을 나왔다. 한 달 이상 운동도 하지 않고 방황했다. 그러자 어머니 엄미자(48)씨가 복싱협회를 찾아가 장윤석 회장(새누리당 국회의원)에게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1인 시위를 벌였다. 신종훈은 “엄마가 협회에 갔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너무 마음이 아팠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두 달이 지났지만 신종훈의 상태는 그대로다. AIBA의 징계위원회가 열리지 않아 여전히 ‘잠정 자격정지’ 상태다. 그러는 사이 신종훈의 선수 생명은 타들어가고 있다. 신종훈이 리우 올림픽에 나가려면 10월 카타르 도하 세계선수권에 나가 올림픽 쿼터를 따야 한다. 하지만 신종훈은 지난해 12월 1차 국가대표 선발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3월에 열릴 2차 선발전에도 못 나가면 올림픽의 꿈은 더더욱 멀어진다.

 김원찬 인천시청 감독은 “시간이 촉박하다. 계약 자체가 무효라는 걸 입증하기 위해서 백방으로 애를 쓰고 있다. 법률적으로도 도움을 받고 있다”고 했지만 가능성은 크지 않다. 최대한 징계를 빨리 경감해서 아시아선수권이라도 나가야 올림픽 출전 기회를 잡을 수 있다. 그럼에도 신종훈이 다시 운동을 시작한 건 1%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그는 “정말 힘들다. 울기도 많이 울었다. 누구 탓을 해도 소용없고, 내 실수였다는 걸 안다”며 “이참에 프로로 전향하라는 분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되든 안 되든 최선을 다해서 올림픽 무대에 서고 싶다. 나와 내 가족, 그리고 나를 믿어준 사람들을 위해 한번만 더 태극마크를 달고 뛰고 싶다”고 했다.

신종훈은 …

■ 생년월일 : 1989년 5월 5일
■ 신체조건 : 1m68㎝, 53㎏
■ 학력 : 경북체중-경북체고
■ 주무기 : 오른손 스트레이트
■ 가족관계 : 1남3녀 중 첫째
■ 경력 : 2009년 세계선수권 3위
2011년 아시아선수권 1위
2011년 세계선수권 2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

인천=김효경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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