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고 → 사장으로 부르고 법정서 유머도 하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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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법정에서 고개를 가로젓지 마세요. 소송 당사자는 판사의 일거수 일투족에 민감할 수밖에 없어 불필요한 오해를 삽니다."

"원고.피고라는 호칭 대신 실제 이름과 '어르신''사장' 등 사회적 호칭을 쓰면 재판부에 대한 신뢰가 커질 수 있습니다."

26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의 사법연수원. 대법원이 주최한 '민사 법정의 표준 법정 언행 연구'세미나에서 20여 명의 판사가 커뮤니케이션(의사 소통) 전문가인 대학교수와 함께 열띤 토론을 벌였다.

보다 편안하고, 부드러운 법정 분위기를 만들기 위한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다. 그동안 법정의 권위에 주눅 들었던 소송 당사자를 어떻게 배려할 것인가가 화두였다.

법원행정처 송무국의 이용구 판사는 "소송 당사자가 진술할 때 기록을 보는 것은 상대를 불안하게 한다"며 "재판장은 눈을 맞춰주고, 진술이 끝나면 그 내용을 요약한 뒤 되물어 상대가 존중받는 느낌을 갖게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광운대 김현주 미디어영상학부 교수는 "판결하면서 '앞으로 바르게 사세요' 등의 훈계 스타일은 상대의 부도덕성을 강조하게 돼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친절하라, 인내하라, 너무 진지하지 말라" 등 1979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에드워드 데이비드 대법관이 만든 '신임 판사의 교육 10계명'을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재판장이 크고 분명한 목소리를 사용하고, 적절한 유머를 구사하며, 재판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행사는 지난해 울산지법에 이어 올해 서울중앙지법에서 시행 중인 법정 모니터링에 대한 평가와 개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이뤄졌다. 법정 모니터링은 재판 과정을 비디오 카메라로 찍은 뒤 사후에 재판 진행 등의 문제점을 분석하는 작업이다. 이는 대한변호사협회와 언론 등에서 "판사의 고압적인 분위기가 소송 당사자들의 자유로운 변론권을 막고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법원행정처 김상준 송무국장은 "내년 상반기 법정 모니터링을 전국 법원으로 확대하고, 이를 토대로 법정 언행교본을 만들어 판사들에게 참고자료로 활용토록 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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