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합병 절차를 중단하라는 법원의 가처분 결정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 50부(부장 조영철)은 4일 외환은행 노동조합이 “두 은행의 통합절차를 중지해달라”며 낸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오는 6월30일까지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은 합병을 위한 예비인가를 내거나 주주총회를 개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결정은 노조와 두 은행이 지난 2012년 2월 작성한 2.17 합의서의 구속력을 법원이 인정한 결과다. 당시 금융위원회의 중재로 노조와 두 은행 대표는 “외한은행이 하나금융지주의 자회사로 편입된 이후에도 5년간(2017년 2월 17일까지) 합병하지 않고 별도의 독립법인으로 존속한다”는 내용의 합의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두 은행이 지난해 10월 합병계약을 체결했고 노조는 “합의서 위반 행위”라며 지난달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합병은 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이지만 이 사건 합의서는 합병을 일정기간 제한하는 내용으로 경영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한다고 볼 수 없다”며 “금융위의 중재로 노사가 오랜 논의 끝에 신중하게 작성한 것으로 구속력을 가진다”고 제시했다. 재판부는 “금융환경의 구조적 변화로 실적이 현저히 악화돼 당장 합병하지 않으면 외환은행의 생존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두 은행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실적 자료 등 제출된 자료만으로는 당장 합병하지 않으면 위태로운 상황이 온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다만 “향후 급격한 국내외 경제·금융의 여건의 변화가 있을 수 있는 점 등을 고려해 효력기한을 6월30일까지로 제한한다”고 했다.
통합엔 급제동이 걸렸다. 늦어도 4월 1일 합병은행을 출범시키려 했던 하나금융은 진행 중이던 모든 절차를 중단하게 됐다. 금융위에 제출한 예비인가 신청서를 이번주 중 철회하기로 했다. 법원 결정대로라면 상반기 중에는 합병 승인을 위한 주주총회도 열 수 없다. 당초 2월 중 예비인가 승인을 내주기로 했던 금융위는 이날 한 발 물러선 태도를 취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이렇게 된 이상 하나금융이 6월까지 노사협상 타결에 주력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하나금융은 법적 대응에 나설 계획이다. 빠른 시일 내로 법원에 가처분결정 이의신청서를 접수하기로 했다. 김정태 회장을 비롯한 전 경영진은 이날 오후 긴급 회의를 열어 대응책 마련에 들어갔다. 김 회장은 “금융산업에서는 사전적 대응을 해야 하는데, 법원이 우리(사측)가 제출한 이익 감소 등 자료를 간과한 측면이 있다”며 “(통합은) 조직과 고객을 위해 내린 경영 판단”이라고 말했다. 이어 “전체 직원들에게 상황을 설명하는 e메일을 발송하고, 아직 통합 노력이 끝난 게 아니라는 대고객 안내문을 작성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외환은행 노조는 환영의 뜻을 밝혔다. 노조 관계자는 “2.17 합의서의 법적 효력을 사법부가 인정한 이상 사측이 일방적·독단적으로 진행해 온 조기통합 절차가 명분을 잃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이번에 법원이 2·17 합의서의 효력을 오는 6월30일까지로 한정해 노조로서도 무한정 버티기 작전은 불가능해졌다.
전영선·심새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