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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인들은 "쉬쉬"하며 거의 대리신고|수기통장 신고한 1천여 예금주들의 사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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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지난 한주일동안 서울명동은행협회안에 마련된 수기통장신고접수처에는 명성사건에 얽힌 수많은 「사연」들이 줄을 이었다.
대리인을 통한 전·현직유명인사의 은밀한 신고도 가끔 눈에 띄었으나 대부분의 신고자들은 「내가 왜 사채꾼소리를 들어야 하느냐」는 식의 떳떳한 태도였다. 심지어 바다건너 뉴욕에 사는 해외동포의 신고도 있었고 상은에서 대출을 받아 그돈을 고스란히 혜화동지점에 맡긴 머리좋은 예금주도 있었다.
그러면서도 이들의 한결같은 공통점은 「내돈」을 언제 돌려받을수있을까 하는 조바심과 집착이었다.
지난 27일까지 모두 1천3백59개의 수기 통장을 신고한 1천여 예금주들의 갖가지 사연을 통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명성자금이 어떻게 모아질수 있었으며 자신도 모르게 명성의 사업자금을 댄 사람들이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를 보자.
○…수기통장 신고자들의 「경험담」을 종합해보면 명성사건 자금조성의 가장 전형적인 패턴을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우선 전주들은 한사람 당 평균 8천9백40여만원씩의 예금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집계결과 나타났다. 따라서 이만큼의 여유자금을 손에 쥔 채 은행의 공금리에 만족할 수 없었던 전주들은 주로 증권사 객장·단자사 창구 등을 오가다가 어느 날 처음으로 상은 혜화동지점의 소문을 듣고 비로소 귀가 솔깃해진다. 소문을 전해주는 사람에 대해서는 대부분 얼굴과 성만 알뿐 정확한 이름과 주소·신분은 물론 전문적인 사채중개인인지 아닌지도 알지 못한다.
때로는 주변친지가 중개인 아닌 중개인 노릇을 하기도 한다. 그만큼 상은 혜화동지점의 소문은 알만한 사람사이엔 널리 은밀하게 퍼져있었다.
이제 전주는 상은 혜화동지점 「창구」를 찾아 평균 8천9백40여만원씩의 3개월 정기예금을 들고 수기통장을 받는다. 김동겸대리에 대해서는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이 많다.
중개인을 통해 예금을 한시람은 통장을 받는 즉시 혜화동지점 옆의 다방에서, 또는 중개인이 알려준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 만난 다방에서 보통 5천만원의 예금에 대해 90만∼1백50만원의 3개월치 선이자를 웃돈으로 받는다. 전문적 사채꾼이 아닌 일반전주들은 대부분 이 웃돈을 은행측의「사례금」으로 알고 받으며 또한 중개인이 얼마를 떼고 주는지 알지도 못한다.
그러나 이들이 받은 금리를 실제 계산해보면 CP(신종기업어음)보다 약간 높은 수준인 것을 알 수 있다. 즉 3개월만기 정기예금의 세후 수익률 연6.36%에다 웃돈으로 받는 연7.2%(5천만원의 예금에 대해 월30만원씩 받는 경우)의 금리를 가산하면 연13.56%가 돼 CP의 세후 수익률 12.37%보다 다소 높다. 이것은 CP금리가 내린 지난해 6월이후의 경우고 그전에는 대부분 월 1%씩쳐서 웃돈을 받았으므로 역시 당시의 CP금리보다 다소 높게 이자가 책정된 셈이다. 명성사건의 경우도 전주들에게 건네지는 사채이자가 전혀 근거없이 책정되지는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중개인 없이 친지의 소개로, 또는 소문만 듣고 찾아간 예금주도 상당한 숫자인데 이들은 대개 창구여직원에게 『여기다 예금하면 사례금을 준다기에 왔다』고 자신을 소개하고 예금을 한 뒤 창구 여직원으로부터 직접 웃돈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이후의 모든 거래는 창구를 통해 정상적으로 이루어졌고 이들은 국세청의 발표를 보고서야 비로소 자신이 「사채꾼」이 되고 만 것을 알았다.
○…이같은 전형적인 패턴이 개개인의 경우에 따라 변형되어 갖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우선 예금주들의 신분부터가 천차만별이다.
3천만원의 예금을 맡긴 40대 계주여인, 5천만원의 「개인돈」을 맡겼다고 주장하는 30대초반의 보험회사 대리, 군대생활 30년끝의 퇴직금 전액을 예금한 퇴역 육군 상사, 남산의 유명한 D중국집주인 L씨(1억원 예금), 을지로 C호텔 지배인(5천만원), 캐나다에 유학간지 5년이 넘은 아들이름으로 1억1천만원을 예금한 모정, 동양화가 K씨(7천만원), 『여자나이 50에 1억원 정도가 없겠느냐』고 항변하는 「복부인」….
○…장삼리사격의 이들 일반 예금주들은 떳떳하게 본인이 직접 신고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굳이 대리인을 보내 신고하는 예금주의 경우에는 정계·금융계의 전·현직 유명인사, 대기업의 사주·임원들이 많았고 또 신고하는 예금액도 컸다.
전공화당 국회의원이었던 Y씨는 지난 22일 신고마감직전 자신의 이름으로 8개, 아들의 이름으로 3개, 도합 11개의 통장을 제시하고 10억원의 예금을 신고했다. Y씨는 그간 김은경·조미순·이명자 등의 가명으로 예금을 해왔었다한다.
또 원로금융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는 K씨도 지난 26일 대리인을 보내 3억원의 예금을 신고했고, 모경제단체의 비상근부회장 M씨도 2억원의 예금을 신고했다.
M씨는 서울의 D빌딩을 소유하고있는 D산업사장이다. 예금액이 가장 많기로는 서울시내에 7∼8개의 빌딩을 갖고있는 것으로 알려진 H씨가 14억2천만원을 신고했다.
이밖에 H그룹 H물산 상무 P씨(6천만원), H강관 전무 Y씨(2억6천만원), 건설업체인 S사 상무 J씨(5천만원), D그룹 D기계 상무 S씨(l억5천만원), 사무기기 메이커 A사 회장 A씨(2억원), S상호신용금고 이사C씨(5천만원) 등 많은 기업체 임원들이 수기통장을 들고 나타났다.
○…신고자들이 밝힌 중개인의 이름도 갖가지. 유씨·박씨·이씨·곽사장 등의 모호한 이름이 가장 많았고 이밖에 이달용·이원종·이근태·최재권·차경남 등의 이름도 많이 눈에 띄었다.
심지어 성도 모르는 「뚱돼지」라는 별명의 중개인도 나왔다.
○…상은 혜화동지점의 소문은 멀리 미국 뉴욕까지 퍼졌었다.
뉴욕에 이민가서 살고있는 교포여인 S씨(37)는 81년 뉴욕을 방문한 친구로부터 혜화동지점 이야기를 듣고 82년7월 서울에 들른길에 중개인을 거치지않고 직접 은행창구를 찾아 5천만원을 예금하고 창구여직원으로부터 1백만원의 「저축장려금」을 받았다. S여인은 당장 돈이 필요없어 1백만원까지도 다시 은행에 넣으려했으나 창구여직원은 『그럴 필요없으니 그냥 가져가라』고 해 할수없이 받아나왔었고 그후로는 단 한번도 웃돈을 받지않은채 공금리만을 받아왔으며 또 그것이 당연한줄 알았다고 S여인은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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