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은 하늘의 일이지만 아이들은 우리가 살려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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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무자파라바드 인근 산간 마을에서 구호 활동을 벌인 김혜자(왼쪽)씨가 가족을 잃고 울고 있는 아이를 달래고 있다. [월드비전 제공]

"온몸이 상처투성이인 채 추위에 떨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오질 않아요."

25일 탤런트 김혜자(64)씨의 목소리는 여전히 떨리고 있었다. 그는 국제 구호단체 월드비전 의료진 7명과 함께 15일부터 일주일간 파키스탄 지진 피해 현장을 찾아 주민 1300여 명의 응급치료를 돕고 귀국했다. 김씨는 이날 한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지진 피해를 복구할 수 있도록 국민이 도와줄 것을 호소했다. 파키스탄에서 피해가 가장 컸던 발라코트-무자파라바드-자바로 이어지는 100㎞의 거리를 왕복하는 강행군으로 자신의 건강마저 해쳤다. 김씨는 의사에게서 "치료부터 먼저 받으라"는 얘기까지 받았지만 "파키스탄의 현실을 알리는 일이 먼저"라며 병원 진료도 미루고 본지 인터뷰에 선뜻 응했다. 그는 "지진은 하늘의 일이지만 살아남은 사람은 사람이 살려야 한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김씨가 월드비전과 함께 도착한 자바 지역은 2만여 명의 주민이 밭을 일구며 단란한 삶을 꾸려온 산촌이었다. 지진으로 4300여 채의 집 중 4000여 채가 주저앉았다. 800여 명이 숨지고 1200여 명이 다쳤는데 대부분은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머리에 구멍이 난 채 울고 있는 한 아이에게 '친구들은 어디 있느냐'고 묻자 '인샬라(신의 뜻대로)'만을 되풀이하며 울더군요"라고 말하는 김씨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 울부짖는 아이에게 김씨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주머니에 불룩하게 담아간 사탕을 건네주는 것뿐이었다. 김씨는 "사탕을 먹으며 눈물을 그쳤던 아이가 부모와 형제를 모두 잃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며 안타까워 했다.

김씨는 이재민 대부분이 심한 추위 때문에 폐렴 증세를 보이고 있다고 현지 상황을 설명했다. 진도 5.7 이상의 여진과 산사태가 이어져 집이 남아 있는 사람들도 불안해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길가에 나앉은 그들에게는 음식과 옷이 절실하다"며 도움을 호소했다.

그는 초등학교가 무너져 학생 400여 명이 목숨을 잃은 참사의 현장도 찾았다. 김씨는 "국기 게양대만 남은 학교에서 땅속에 갇힌 아이들의 울부짖음이 들리는 것 같았다"고 당시 느낌을 전했다. 김씨는 "파키스탄에서 눈물도 말라버린 두려움과 공포를 느꼈다"며 "현지에서 물품을 구매할 수 있도록'현금'을 후원하는 것이 가장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씨는 1992년부터 월드비전과 함께 에티오피아.인도 등 기아지역의 어린이를 꾸준히 도왔다. 지난해 자신의 경험을 모은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를 펴내 수익금 전액을 이 지역 어린이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김씨는 25일 파키스탄 구호기금으로 1억원을 낸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모두 5억여원을 월드비전에 기부했다. ※후원문의:한국 월드비전(http://www.worldvision.or.kr)/02-783-5161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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