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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동식물 … 뒷짐만 진 환경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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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최근 북제주군 조천읍 대흘 및 교래리 일원의 100만 평에 달하는 '교래곶자왈' 지역에 한 개발업체가 27홀의 골프장 및 호텔, 콘도, 사파리 등 대규모 리조트를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서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위기의 야생 동식물이 대거 발견됐다. 2급 곤충인 '애기뿔소똥구리'를 비롯, 세계적으로 제주도에서만 자생하는 '가시딸기' 군락지, 국내 미기록종으로 알려진 '큰톱지네고사리' 등 각종 희귀 식물들이 발견된 것이다.

특히 애기뿔소똥구리는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 소속 우원식 의원과 환경단체들이 현장답사를 했을 때만 해도 발에 차일 정도로 국내 최대의 집단서식처임이 드러났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지역은 곤충의 종 다양성 면에서 한라산 국립공원이나 다른 곶자왈 지역보다 그 가치가 상대적으로 높다고 한다.

물론 이들 곤충과 식물은 개발사업자가 제출한 '환경영향평가서'상에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이 같은 희귀 동식물이 발견되자 도내 환경단체들은 이 지역을 '야생 동식물 보호법'에 따라 '특별보호구역'으로 지정해줄 것을 환경부(영산강환경청)에 요청했다. 그리고 출입제한 및 정밀조사 등의 보호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제주도에 책임 떠넘기기에 바쁜 모습이다. 해당지역에 대한 최소한의 정밀조사는커녕 환경단체가 나서니 마지못해 현장에 따라오는 정도다.

이는 명백한 법 위반이다. 야생 동식물 보호법 제13조 2항에 따르면 '환경부 장관은 멸종위기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 등에 대하여 보호조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야생 동식물의 보호를 위해 국민에겐 이런저런 금지.제한 조항을 강제하면서도, 정작 주무부처인 환경부는 법적으로 규정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힘들다.

필자는 이번 사례를 개발사업자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환경영향평가서'를 부실 왜곡 작성해 올리더라도 '어떻든 개발은 된다'는 식의 업자들의 관행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다.

환경부도 이러한 문제점을 인식, 환경평가와 관련한 제도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제도가 만들어질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상황이 한가롭지 못하다. 어물쩍거리는 사이에 애기뿔소똥구리는 하나 둘씩 곶자왈에서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지훈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