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사회공헌 지표' 나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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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지난해 매출액 5000억원에 순익 300억원을 낸 제조기업 A사. 이제 중견기업 반열에 오른 만큼 사회공헌활동에 관심을 가져보기로 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일에 얼마를 써야할지 담당자 B부장은 답답하기만 하다. 비슷한 업종과 규모의 기업들의 예를 참고하려 해보지만, 제대로 된 자료를 구하기가 힘들다.

앞으로는 이런 B부장의 고민이 덜어질 전망이다. 기업들의 사회공헌의 성과와 수준을 평가할 수 있는 지표가 재계와 학계의 공동연구로 개발됐기 때문이다. 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비영리학회는 24일 '효율적인 사회공헌활동의 추진을 위한 기업 사회공헌 지표'를 발표했다. 7개월간에 걸친 연구 프로젝트에는 삼성, 현대.기아차 그룹, LG전자, 한화 등 평소 사회공헌 활동에 적극적이었던 10개 기업이 참여했다.

◆ 어떤 지표로 구성됐나=지표는 ▶사회공헌 철학 ▶사회공헌을 위한 사내 인프라 ▶공헌 규모 등 7개의 대항목 아래 80여개의 세부 항목으로 구성돼있다. 주요 세부항목으로는 ▶전담부서가 있는가 ▶사회공헌지출액이 세후이익의 몇%가 되는가 ▶직원 1인당 연간 자원봉사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등이 있다. 일종의 자가진단을 위한 체크리스트(점검표)다.

연구팀은 이 지표를 이용해 137개 기업에 대해 예비조사를 해봤다. 그 결과 2004년 기준으로 이들 기업의 사회공헌 평균 총지출액은 77억5900만원, 자원봉사활동 시간은 평균 5779시간이었다.

◆ 어떤 의미 있나=평가 지표 개발은 기업의 사회공헌 정도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기업들은 그동안 사회공헌 활동을 경쟁적으로 펼쳐왔지만 그 실적을 놓고 거품 시비가 일기도 했다. 가령 정치자금이나 각종 법정 기금, 경제단체 회비 등을 사회공헌 비용으로 발표하기도 한 것. 이번 연구는 사회공헌비용의 기준을 명확히 함으로써 시비의 소지를 없앴다. 가령 ▶프로스포츠구단 운영비 ▶법적 의무부담 비용 ▶사내복지기금 ▶경제단체 회비 등은 세법상 기부금으로 분류되지만 사회공헌 비용에서는 뺐다. 대신 임직원 자원봉사에 사용된 각종 경비는 인정하기로 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권위있는 평가지표가 있다. 미국 다우존스의 'DJGSI 지수'와 영국 파이낸셜타임스의 'FTSE 4Good 지수' 등이다. 이들은 기업의 재무성과와 함께 사회적.윤리적.환경적 가치들을 종합평가해 발표한다.

◆ 문제는 없나=한 대기업 관계자는 "이런 평가지표가 기업들의 순위를 매기는 데 이용되고, 시민단체나 정부의 입김을 초래하게 된다면 기업들에겐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박태규 비영리학회장(연세대 교수)은 "우리나라의 사회공헌활동이 아직 초창기인 점을 고려, 이들 지표가 기업 순위 산정에 이용되기보다는 사회공헌을 위한 가이드라인으로 활용토록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고 말했다.

이현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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