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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에 갇힌 지구촌 아이들] 상. 절대빈곤에 배 곯는 아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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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프리카인들이 물 긷기에 쏟는 시간은 하루 평균 다섯 시간이라는 통계가 있다. 그 일은 대개 여성과 소녀들의 몫이다. 그들은 웅덩이로, 마른 강 바닥으로 가서 물을 머리에 이고 먼 길을 걸어온다. 건조한 계절에는 물 긷기에 동원되느라 학교가 마비될 정도다. 그래서 지하수 펌프 주변에 산다는 것은 행운이다. 10일 말라위 수도 릴롱궤 인근 농촌. 소년들이 물을 뜨러 몰려 와 있다.

생후 10개월인데도 2~3개월 간난아기 체중인 4.5㎏에 지나지 않는 란다울로 유스프가 체중을 측정받고 있다. 유스프는 너무 힘이 없어 그런지 모기소리처럼 가늘게 울었다. 저울을 지탱하고 있는 간호사의 발이 유스프의 바싹 마른 몸과 비교된다.

에티오피아의 수도 아디스아바바에서 북쪽으로 50㎞ 떨어진 차추를 찾았다. 제법 사는 동네라는데도 전기나 상수도가 없다. 그곳에서 소 치는 소년의 사진을 찍었다. 파리가 잔뜩 얼굴에 꼬여도 내칠 생각은 않고 웃기만 한다. 워낙 익숙한 때문이다.

아프리카 말라위의 지형은 평탄하고 온순하다. 그 땅을 3년 가뭄이 찢어놨다. 강바닥은 갈라지고, 사람들은 진짜로 굶는다. 애들은 어른보다 먼저 쓰러지고 있다. 50년 전 의사 체 게바라가 절망했고 혁명의 이유를 찾았던 페루 아마존 정글의 상황은 놀랍게도 오늘날까지 그대로다. 스리랑카엔 내전의 총탄에 희망을 빼앗긴 체념한 사람들이 즐비하다. 인간으로 살아남는 것조차 벅찬 그 땅에서 아이들은 엄마의 젖을 통해 고통과 불안에 감염되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 이 지구촌 아이들은 앞으로 세계라는 공동체에 일어날 일을 경고한다.

중앙일보와 국제협력단(KOICA)이 지구촌 가난 현장 점검 공동프로젝트를 펼치는 것은 세계 공동체를 위한 의무감 때문이다. 한국이 받아온 해외로부터의 도움을 생각하면, 지구촌을 돕는 우리의 손길이 더 적극적이어도 된다는 판단도 작용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절대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의 단면부터 소개한다.

아프리카 말라위 2살 아이 마키운

화려한 색상의 아기 포대기를 살짝 젖혔다. 아! 포대기에 가려진 참상. 외할머니 품에 안겨 있는 아이는 오래된 관에서 방금 꺼낸 미라 같았다. 힘겹게 숨 쉰다는 것을 제외하면 그랬다. 몇 살인지 짐작이 안 된다. 앙상한 몸에 비해 너무 커 무거워 보일 지경인, 깡마르고 푸석한 머리엔 혈관이 툭툭 불거져 나온다. 움푹 꺼진 눈두덩 아래로 유난히 큰 흰자위가 힘없이 구른다.

어른 손가락 한 개 반 굵기의 팔뚝엔 검고 얇은 피부가 주름지고 터진 채 살짝 걸쳐 있다. 푹 꺼진 볼, 멍하니 열린 입술은 혈색 없이 허옇고, 뼈만 남은 발은 차다. 뼈와 피부 사이의 영양분이 몽땅 빨려 무너져 내린 듯하다. 슬픔과 분노가 뒤섞여 북받쳤다. 천천히 포대기를 덮었다. 9일 말라위 남부 므완자 지구에서였다.

아이의 이름은 패트릭 마키운(사진). 두살짜리 사내 아이가 체중은 3~4개월된 아기 정도인 4.6kg이다. 특이하게도 모잠비크 사람이다. 무턱대고 왔지만 너무 심한 영양실조여서 말라위 므완자 병원이 할 수 없이 받아줬다. 병원은 마키운에게 아스피린(항바이러스), 비타민A, 빈혈약을 처방했고, 고영양 분유인 F-75를 먹였다. 전형적인 영양실조 처방이다.

마키운은 말라위 중.남부와 모잠비크 중부 지역을 3년째 강타하고 있는 한발에 직격탄을 맞았다. 병원 관계자는 "하루에도 여럿, 한 달에 수십 명 그런 애들이 말라위 엄마, 모잠비크 엄마에게 업혀 온다. 입원 못하는 애도 많다"고 한다. 말라위 엄마들은 "우리 사정이 더 안좋다"며 모잠비크 엄마들을 미워하는 듯하다. 7일 남부 좀바의 병원에서도 영양실조로 입원한 애들을 수도 없이 봤다. 마키운의 엄마 마거릿 사인도 수척한 모습이다. 나이를 물었더니 어이없게도 "모른다"고 했다. 그곳은 대개 그랬다. 아무튼 애가 왜 그렇게 됐는지 물었다.

마거릿에 따르면 마키운은 볼이 통통한 아이였다. 개구쟁이였고, 흙에서 뒹굴며 잘놀았다. 몇 주 전 여동생이 태어나 엄마를 뺏기자 심통도 낸 건강한 아이였다. 가뭄에 식량 사정이 어려워 하루 한 끼, 어쩌다 두 끼지만 옥수수 가루를 쪄서 만든 주식 시마도 잘 먹었다. 그러다 어느 날 열이 났고, 설사를 했다. 두어 주 그러더니 아이는 탈진했다. 엄마는 기운 차리라고 도정된 옥수수죽을 먹였지만 애는 토하거나 설사했다.

설사는 영양실조로 신체 기능이 저하됐다는 신호다. 못 먹어도 어른은 2~3개월 가지만, 5세 미만은 2주면 치명타를 입는다. 전분만 남고 영양은 없는 도정 옥수수도 문제다. 영양실조로 신체 기능이 낮아진 마키운에게 소화가 잘 안 되는 전분을 떠 먹이니 결과는 뻔했다. 그러나 대안은 없었다. 가난 때문이었다.

마키운의 가족은 엄마와 아빠를 포함해 5명. 농촌에서 전형적 흙집에 사는 이 가족이 경작하는 땅은 1ha. 아주 못 사는 편은 아니다. 주곡인 옥수수나 채소를 심고, 작황이 좋으면 판다. 그런데 거듭된 한발로 지난해 옥수수 수확은 50㎏들이 세 자루에 그쳤다. 하루 세 끼 먹으면 애들이 큰 4인 가족이 한 자루로 3주 먹는다. 애들이 어려 더 오래 먹는다 쳐도 세 자루로 5개월을 넘기기 어렵다. 산 입에 풀칠은 하지만 하루 한 끼가 예사다. 마거릿은 "옥수수죽 말고 마키운에게 뭘 해 줄 여유가 없었다"고 했다. 그 옥수수를 팔면 자루당 600~700말라이 콰차, 달러로 5~6달러다. 1년 농사가 20달러를 못 넘는다는 얘기다. 그 동네 사정이 대체적으로 그렇다.

마키운의 엄마는 이번에 세 자루를 다 팔았다. 약값과 차비를 마련해 4시간 차를 타고 통제가 느슨한 국경을 넘어 9월 27일 므완자 병원으로 왔다. 수준은 낮아도 모잠비크보다 낫고, 거의 무료다. 퇴원해 집에 가면, 그 옛날 우리가 보릿고개에 소나무 껍질을 삶아 먹었듯, 덜 익은 망고를 다시 매 끼 삶아 먹어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진짜 걱정은 다른 데 있다. 마키운은 여전히 토하고 설사한다. 9일 현재 다시 300g 줄어 4.3㎏가 됐다. 엄마 마거릿의 한숨 소리가 깊다.

내년 수확 때까지 인구 34%가 '기아'
심각한 말라위 식량 상황

말라위의 식량 위기는 심각하다. 유니세프의 최근 통계에 따르면 인구의 34%인 420만 명이 2006년 3월 수확 때까지 최소 식량도 없이 팽개쳐져 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최근 그 수를 500만 명으로 올렸다. 그중 100만 명은 5세 이하 어린이와 임산부다. 아이들은 더 심각하다. 최근 한 조사에서 5세 이하 가운데 48%가 발육 정지됐고, 5%가 심각한 영양실조이며, 22%는 저체중 혹은 영양실조다. 그 원인은 3년째 중.남부에 집중된 한발 때문이다. 예를 들어 남부 좀바주의 8개 지구엔 평균 41일 비가 왔다. 우기인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180일 동안 비가 충실히 내려야 주곡인 옥수수 수확이 알차다. 그런데 25% 수준만 내렸다. 좀바의 칭알레 지구 마사울라에는 겨우 20일 비가 왔다. 관개수로는 없고 모두 천수답이다. 말라위 정부에 따르면 10월 현재 14만4000여t의 곡물이 부족하다. 그래서 10월 15일 '국가재난상황'을 선포했다. WFP는 8월 말라위에 대한 8800만 달러 상당의 식량 지원을 국제사회에 요청했다. 그러나 한국은 아직 아무 지원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

저개발국 어린이 1100만 명
매년 기아 . 질병으로 사망
세계의 빈곤 현황

지금 이 순간 기아와 가난으로 3초당 한 명의 어린이가 죽고 있다(UNDP). 매년 저개발국에서 태어나는 1억1000만여 명의 아이 중 10%는 다섯 번째 생일을 맞기 전에 영양실조와 예방 가능한 질병으로 죽는다. 영양실조나 질병으로 죽게 되는 가장 큰 원인은 전쟁이나 가뭄이 아니라 식량을 살 돈이 없기 때문이다.

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에 따르면 굶는 아이 한 명의 하루 생존을 위한 식비는 19센트. 원화로 200원 남짓한 돈이다. 그러나 세계에선 매년 1인당 300kg, 모든 사람이 먹고 남을 만큼의 식량이 생산되지만 3분의 1 이상이 고기를 위해 가축 사료로 전용된다. 가난의 뿌리는 너무 질겨서 극복이 어렵다. 2000년 유엔에 150여 개국 지도자가 모여 15년 내에 기아를 없애는 것을 포함, '밀레니엄 개발 목표(MDG)'를 세웠다. 그러나 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10억 명 이상의 어린이가 '절대 빈곤층' 가정에서 태어난다. 세계은행이 정한 절대 빈곤의 기준인 '1일 생활비 1달러'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살고 있다는 의미다.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사정은 상대적으로 더욱 악화됐다. 동아시아의 절대 빈곤층 비율은 1981년 58%에서 2001년 15%이하로 크게 감소했지만 모잠비크 등 아프리카 국가는 여전히 30%대에 머물고 있다. 이런 나라의 아이들은 늘 허기지고 의료 혜택도 받지 못한다. 비를 가릴 집도 없고, 깨끗한 식수가 부족해 질병 위험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에이즈와 가뭄, 지형적 고립, 내전의 악순환으로 인해 결핍과 죽음의 덫에 걸려 있다.

빈곤은 어린이의 생명 유지, 성장.발달을 막아 건강한 어른으로 자랄 기회를 영원히 앗아갈 수 있다. 유년기의 빈곤은 성년기의 빈곤으로도 이어진다. 성인 빈곤은 파괴적인 정치 문제로 비화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단면이다. 가난의 대물림과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아동 빈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특별취재팀

아시아 = 김은하 기자, 최병관 사진가
아프리카 = 안성규 기자, 이창수 사진가
남미 = 이원진 기자, 최재영 중앙일보 시사미디어 사진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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