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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 곳 못 찾는 돈 은행서 대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지난 일요일의 느닷없는 공습경보는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잠시나마 재산을 어떻게 운용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가 하는 것을 생각게 했다.
비상시엔 말할 것도 없고 평상시에도 국민들의 재산운용상태는 그 시대의 사회심리를 나타낸다.
실명제실시 한달 보름. 그 짧은 기간에도 시중의 실물동향과 금융의 흐름에 영향을 줄 사건들은 많았다.
7·18증시 활성화 방안. 제2금융권 금리인하, 상장사들의 상반기영업실적 호전, 계속되는 경기예고지표의 오름세, 명성사태, 휴전 후 최초의 공습경보 등등.
그러나 최근의 시중 실물·금융동향은 전에 없던 무감증에 걸려있다.
지난해 풀었던 그 많은 돈들을 급속히 거둬가는 통화당국의 긴축소리만 높을 뿐 증권·단자는 물론, 부동산·금·사채·암달러시장 등이 하나같이 조용하다.
옛날 같으면 사회사건에 예민한 반응을 보일 것들이 무척 둔해진 것이다. 시중자금은 고무풍선과 같아 어느 한 곳을 누르면 어딘가 다른 한곳으로 비집고 나가게 마련이다.
최근 들어 은행의 단기저축성 예금구좌가 늘어나고 있고 따라서 은행의 예금계수가 눈에 띄게 올라가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동산·금등에 대한 보물선흐가 퇴색한것은 일단다행스런 일이지만 증권·단대마저 침체하고 그 반작용으로 은행의 대기성예금이 느는것을 꼭좋다고만
할수는 없다.
이 같은 전에 없던 현상을 실물·금융경제 일선종사자들의 반응을 통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H증권사의 모 지점장은 실명제가 실시된 지난 7월1일이 며칠 지나 평소 거래가 있던 모회사의 경리부장으로부터 의사타진을 받았다. 물론 금융긴축이 강화되고 있을 무렵이었다.
회사의 단기여유자금 수억원을 한달 간 맡길테니 어느 정도의 이문을 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증권회사의 지점장은 공금리보다 높은 연12%의 조건을 제시했으나 회사측은 연13%아니면 안된다며 다른 곳을 찾아갔다.
한은의 통화관리실무자는 올 들어 매달 초 전달의 통화동향을 발표하면서 지난해 이맘 때처럼 곤혹스런 표정을 짓지 않는다. 총통화(M2)증가율은 매달 떨어져 가장 최근에는 연율18%수준에 와 있고 저축성예금의 증가세는 눈에 띄게 회복되고 있으며 시중어음부도율은 연초부터 내리 0.04% 수준에 머물러 자금난을 탓하는 일부 기업들의 소리에 별로 귀를 기울이지 않아도 되게 돼있다. 물론 크게 늘고 있다는 저축성예금 중 한달 짜리 정기예금이 많은지, 1년 이상 짜리 정기 예·적금이 많은지에 대해서는 밝히기를 꺼리고 있긴하지만.
○…시중의 금은상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입학철·결혼시즌 등의 낱말은 아예 잊고 산다. 과거 오랫동안 지속돼오던 연중 수요·공급패턴이 없어진지 오래고 돈쭝당 소매 5만원선에서 금값은 연초부터 요지부동이다. 다만 최근 개도국 외채불안으로 국제금값이 다소 오르자 국내 금값도 돈쭝당 5백∼1천원정도 오르는 기미가 있으나 거래는 한산하기 이를 데 없다.
요즘 암달러를 사는 시세는 달러당 8백7∼8백10원정도로 지난달 초에 비해 2∼3원 오른 시세일 뿐 역시 거래는 뜸하다.
부동산 시세는 아예 내림세다. 거래도 별로 이뤄지지 않는다.
주택은행과 주택공사의 조사로도 자난 6월중 서울지역 아파트 시세는 3월보다 평균 6% 내렸고 이에 따라 국세청도 특정지역외 아파트·땅값 기준가격을 곧 내릴 방침이다.
단자나 사채시장도 역시 한산하다.
CP(신종기업어음)매출액은 지난 6월만 해도 하루 평균 1백40억∼1백60억원대를 오갔으나 8월 들어서는 하루 70억∼80억원으로 절반수준이 됐다.
결산이 끝난 7월중에는 5천7백35억원의 수신이 단자를 빠져나가기까지 했다.
또한 명성문제가 커지자 지난 3∼5월 금융긴축 속에서 서서히 고개를 드는가 했던 사채는 다시 꼭꼭 숨어버렸다.
유독 은행의 저축성 예금만이 꾸준히 늘고 있다. 저축성 예금은 지난 7월중에만 다시 3천5백58억원이 늘어 올 들어 7월까지 새로 늘어난 저축성 예금은 모두 1조5천2백6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3%나 늘어났다. <김수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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