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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새지도<29>은행을 잡아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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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시중은행의 민영화 물결을 타고 대기업들의 은행주식 매입경쟁은 치열했다. 은행참여의 길이 막히면 마치 80년대의 성장대로에서 낙오라도 하는양 필사적이었다.

<해외 실전경험 발휘>
81년5월27일 한일은행의 정부보유주식 공매입찰 창구 (서울신탁은행)는 은행티킷을 타기위한 대기업들의 각축장이었다. 마감시간인 하오4시를 넘어서도 사람들이 몰려들자 번호표가 배부됐다.
뛰늦게 달려들어 서류를 꾸며내는 「눈치꾼」들 때문에 은행측은 1시간 넘게 마감시간을 연장시켰다. 어느 기업체의 직원은 입찰서류에 일일이 도장을 찍고 주민등록증을 챙기느라 연장된 마감시간마저 지키지 못하고 서류도 준비된것의 절반인 30여장 밖에 제출하지 못하는 촌극도 빛어졌다.
은행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거나 자기자본비율이 20%미만인 부실기업은 계열기업 확장을 금지한다는 방침(9·27조치)에따라 26개 재벌기업들은 아예 처음부터 은행보유주식 불하에 참여할수 없게 되었다. 이때문에 재벌그룹들은 개인명의의「대리입찰」을 서둘렀다.
한일은행 주식 공매에서 대림산업은 양동작전으로 타사들에 쓴잔을 안겨주었다. 2차 입찰에서 지능적인 전법을 동원했다.
당시 대림은 보증금으로 8억8천5백만원과 함께 입찰서를 냈는데 그들이 살수있는 최고한도(3백75만주) 대로 살것이라는 것은 누구나 의심치 않았으며 그 계산대로라면 주당 1천1백80원에 입찰한 셈이다.
뚜껑을 열어보니 대림이 응찰한것은 최고 한도에서 9만6천주 적은 3백65만4천주였다.
주당 입찰가격이 예상보다 높은 1천2백11원 이었다. 타사 경쟁자들로 하여금 l천2백원선을 넘지 않도록 유도하기 위한 작전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나돌았다. 해외건설 시장에서 실전을 통해 얻은 경험을 유감없이 발휘한 것이라고도 했다.
작년9월 정부가 갖고있는 제일은행 주식을 공매입찰에 붙였을 때는 완전히 대우그룹의 독무대가 되었다.
법인명의로는 참가자격이 없는 대우가 주거래은행의 계열기업군에서 제외된 계열회사 피어리스(주)를 내세웠기 때문에 유일한 법인 응찰자가 되었다. 대우는 이 이외어 김우중회장 개인과 대우사장인 김용원·이우복·이경훈씨 이름을 걸고 대량 청약을 했다.

<증시에서 암중모색>
그러잖아도 증권시장에서는 일찍부터 대우가 계열회사인 동양증권 창구를 통해 제일은행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해 「대우가 이미 제일은행을 장악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서울신탁은행의 경우에는 현대그룹과 럭키금성그룹이 격돌했다.
현대는 현대중공업을 내세우고 럭키금성은 금성사를 끌어냈다.
해외에서 현대와 맞서왔던 동아건설도 참여했다. 이밖에 동국제강은 중앙투자를, 신동아그룹은 공영사를 앞세워 대리입찰에 나서도록했다.
이 싸움에서 현대가 전체지분의 12%를 차지, 대주주가 되었다. 동아건설·동국제강·서주산업등 몇몇 기업체외에는 내정가 미달로 탈락했다.
뒤늦게 은행버스에 올라타려다 실패한 럭키금성은 낙심천만이었다. 그래서 제일은행주식 공매입찰에서 팔고남은 부분에대한 재공매에 서둘러 나섰다. 주력기업인 금성사명의 뿐만아니라 계열사 임직원 명의까지 모두 동원했다.
이에 질세라 현대도 인천제철과 임직원의 이름을 앞세웠다. 이리하여 제일은행은 대우그룹을제1대주주(14·4%)로 하여 현대(10·3%) 럭키금성(8·5%)등 3대 그룹이 분할 점령하게되었다. 시중은행의 주식을 보유하기 위해 대기업들은 이미 증권시장에서 그 방편을 암중모색해왔다.

<상은매각시기 미정>
대우는 계열사인 동양증권을, 현대는 국일증권을, 삼성은 신흥증권을, 그리고 동아건설은 삼보증권 창구를 통해 주식을 사들여왔다.
장기불황과함께 금융긴축으로 기업자금 사정이 몹시 어려운 때인데도 시은주 매수에 나섰다. 금융산업을 향한 기업의 집념은 이토록 대단했다.
제일·서울신탁은행에 이어 민영화 막차를 타게된 조흥은행의 주식공매결과 삼성이 대주주로 부상했으며 현대·신동아그룹도 끼였다.
이보다 훨씬 앞서 있었던 한미합작은행 설립과정에서는 어느기업이 더많은 몫을 차지하느냐를 놓고 적잖은 산고를 치렀다.
미BOA (아메리카은행)과의 합작에 참여할 대우·삼성·럭키금성·대한전선·국제상사등 국내6대 주주들이 총지분 배정문제를 놓고 여러차례 논의를 했으나 대우측이 19%를 주장하는 바람에 늘 난관에 부딪쳤다.
막판에는 대우가 9%, 삼성·대한전선이 각 7%, 기타 삼미·진로·고려합섬등이 2∼3%씩 보유하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정부는 무역협회가 대주주로 되어있는 상업은행도 일반에 매각할 방침을 세우고있으나 그 시기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이 없다.
외환은행이나 국민은행의 민영화에 대해서도 그 필요성이 지적되고 있으나 시중은행과 같이 완전 민영화하는 것보다는 정부의 일부 지분을 내놓아 기업이 참여할수 있도록 하는게 어떠냐하는 정도로 정책당국자의 의견제시가 있었을뿐이다. 구체적인 검토가 실시되기에는「여건의 성숙」이문제라는 것이다. <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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