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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운구·권태균·허용무씨 화랑 '와'서 다큐 사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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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운구 작, '거제, 경상남도, 1974'.

권태균 작, '안동 임동면 수곡리, 1989'.

허용무 작, '경상도 봉화, 1996'.

사진가 강운구(64)씨가 잡은 배 안의 풍광은 누추하면서도 따스하다. 1973년 경남 거제 구조라에서 학동으로 가는 마을 버스와 같은 배다. 연탄 몇 장을 모셔놓고 풋잠이 든 할머니 옆에서 소년은 바다에 눈을 박은 채 뚱하다. 소주 궤짝에 바리바리 짐 꾸러미가 고단한 어촌 살림을 드러낸다. 삶은 매양 부서지고 또 부서져도 다시 부딪는 파도 같다. 그는 자신의 작품을 "사진으로 남아 있는 화석들"이라고 말한다.

사진가 권태균(50)씨는 댐 건설로 마을을 떠나야 하는 한 가족의 뿌리 뽑힘을 끈끈하게 스케치했다. 89년 수몰을 앞둔 경북 안동 임동면 수곡리의 설날 풍경이다. 마을 뒷산에 조상의 위패를 묻고 내려온 쓰린 가슴에 찬 술 한 잔씩을 붓고 나니 속이 아리다. 마을 수몰을 내방 가사로 지은 할머니의 낭송을 듣는 식구 얼굴에 착잡함이 서린다. 농촌 마을은 사라지지 않고 추방당했다.

사진가 허용무(41)씨 눈길을 붙든 곳은 사람이 떠나버린 시골 마을이다. 96년 경상도 봉화에서 만난 폐교는 헐벗은 농부의 모습을 닮았다. 창문은 깨지고 책상과 걸상도 없어졌다. 휑뎅그렁한 교실 저 편에 돌아선 노인의 뒷모습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인간의 존엄성은 파괴되고 공동체는 무너졌다.

강운구.권태균.허용무씨는 한국 다큐멘터리 사진의 맥을 잇는 사진가다. 경기도 양평 전수리에 새로 문을 연 사진전문 화랑 '와(瓦)'가 개관기념전 '짧은 연대기'로 세 사람을 불러모았다.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 한국 땅을 근대화와 도시화의 불도저로 밀어버린 개발독재와 시대상황을 전하는 세 사진가의 흑백 사진은 이제 역사가 된다.

화랑 설계를 맡은 건축가 이일훈씨가 지붕에 얹던 기와를 벽 마감재로 써 화랑 이름을 '와'로 했다는 김경희 대표는 "앞으로 다큐멘터리 사진 중심의 화랑으로 한국 사진의 힘을 키우겠다"고 말했다.

이달 22일 오후 2시 허용무, 29일 강운구, 다음달 13일 권태균씨가 전시장에서 관람객과 만나 사진 이야기를 나눈다. 11월 27일까지. 031-771-5454(www.gallerywa.com)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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