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해련의 트렌드 파일] 노트북으로 변한 페라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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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시장의 경쟁이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이 시장에는 고객 중 매출 상위 1~5%의 VVIP만을 위한 최상의 상품과 마케팅이 주요 관건이 된 지 오래다. 그 중에서도 다른 영역의 명품들이 협업(Collaboration)해 신개념 상품을 출시하는 경향이 눈길을 모은다. 대표적 성공 사례는 영국에 뿌리를 둔 자동차 회사 벤틀리와 스웨덴의 명품 시계 업체 브라이틀링 간의 협업이다.

벤틀리는 영국의 유명 축구선수 데이비드 베컴이 부인 빅토리아에게 지난해 크리스마스 때 17만 파운드(약 3억4700만원)짜리 '벤틀리 아르나지 T'를 선물하면서 국내에도 유명해졌다. 브라이틀링은 스위스의 대표적 명품시계 브랜드로 1884년에 설립돼 120년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회사다. 두 기업은 각자의 오랜 기술력을 공유키로 약속하고 각사의 상품이 갖고 있는 견고한 이미지를 배가하고 각사 전통을 강조하면서 명품 중 명품으로 거듭났다.

루이뷔통 역시 덴마크의 명품 오디오 뱅앤올룹슨과 손잡고 MP3 플레이어 '베오사운드2'의 전용 케이스를 제작.판매해 화제가 되고 있다. 루이뷔통은 최고급 소재인 노마드 가죽을 이용해 검은색 버튼과 알루미늄 본체를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명품 간의 만남으로 서로의 이미지 손상 없이 베오사운드 명품 MP3라는 차별화된 컨셉트를 전달하기 위한 방안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루이뷔통 역시 새롭게 프리미엄 라인을 확장하는 방안으로 이용됐다.

또 대만 전자업계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에이서는 최고급 스포츠카 페라리와 협업, '페라리 4000'이란 노트북 컴퓨터를 출시했다. 페라리의 뛰어난 자동차 외관 재료인 카본 파이버(Carbon fiber) 커버를 사용해 기존의 알루미늄 무게 절반에 철강보다 여덟배의 복원력을 가진 노트북 외관을 만들고 페라리 스포츠카의 고광택 밀러 코팅 기술도 활용, 새로운 개념의 가볍고 견고하며 세련된 외관의 고급 노트북을 탄생시킨 것이다. 가격 또한 200만원 정도로 경쟁력을 갖췄다.

우리나라도 최근 다양한 기업 간 협력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사례는 실질적으로 최상의 명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최고의 명품 비법을 공유하는 협업 사례이기보다 마케팅 효과를 노리는 단발적인 제휴의 경우로 보인다.

형식적인 마케팅 이슈만 가지고는 눈높은 명품 소비자를 충성도 높은 고객으로 만들 수 없다. 유명 패션 디자이너 이름을 딴 휴대전화처럼 다른 나라 패션 명품 디자인을 얻어와 포장을 하는 방안은 단기적 마케팅 효과는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독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에프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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