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연재소설 작가 김주영씨의, 취재길을 따라|단운사주변엔 『활빈도』의 숨결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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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고창=임재걸기자】정읍에서 40여리.
고창군이 서해안과 맞닿는 언저리에 비운사가 자리잡고 있다.
전북일대에서는 드물게 뛰어난 산세로 비경을 이룬다.
「미당 서정주시비」가 조촐히 서있는 산기슭을 따라 도솔암으로 오른다.
작은 승용차가 지나갈 만한 폭의 길이지만 오를수록 정적에 싸이는 주변때문에 마치 오솔길을 걷는것 같다.
김주영씨는 화가 최연우씨와 사진기자등 일행을 앞질러 혼자서 침묵속에 걸어간다.
대하소설 『활빈도』 의 첫 무대, 비상의 큰 날개가 힘차게 퍼득이는 이곳에서 그의 상상력은 어떻게 펼쳐지고 있는지….
일행은 그를 방해하지 않기로 했다.
수림속의 작은 길, 간혹 산새들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문득 시간이 정지한 듯, 아니면 거꾸로 흐르는 듯한 생각이 든다.
이 길을 스스로를「활빈도」라고 생각하면서 활보하며 내려갔던 80여년 저멀리의 사람들을 만나는 듯한 착각.
김주영씨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것이다.
그들과 함께 산길을 달리고 고민하고 기뻐할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설이 될리가 없겠지….
도솔암을 오른쪽에 두고 언덕을 넘은 곳에서 김씨는 멈추어섰다.
높이 20m 가까운 암벽에 새겨진 마애불상 앞이다.
『이 불상 앞에서 한 젊은이가 뜻을 세우고 떠나는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전개시킬 생각입니다. 동학의 잔당으로 도솔암에서 동학소탕이 진정되기를 기다렸던 사람이 「이렇게 칩거해서는 안된다」 고 생각하고 일어서는 것입니다. 그는 위운사에서 고승을 만나 앞으로의 갈길에 대해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김씨는 그러면서 불상의 배꼽 부분을 가리킨다.
거기에 사각형으로 움푹 파인곳이 보인다.
『저속에 비결녹이 숨겨져 있었다는 전설이 있읍니다. 저는 그속에 동학의 비책이 숨겨져 있었고 동학의 한사람이었던 젊은이의 아버지가 그 때문에 죽었다고 상상해봅니다.』
동학과 활빈도를 연결시키는 이유는 또 불교와 관계짓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활빈도가 내건 강령중에는 동학의 강림과 유사한 것이 많습니다. 고을 소작로 금지·외상상권확대반대등과 폐정의 개혁등이지요. 불교와 관련짓는 것은 활빈도의 주세력인 동학잔당과 농민들이나 불교계가 다같이 그 시대의 억눌렸던 층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기록에 경주 수운사와 양산 통도사 부근에 근거가 있었다는 것이 나옵니다. 사찰의 지원 내지는 방조가 있었다는 생각입니다』
활빈도의 성격은 어떻게 설정했을까.
『그들은 의적이고 의병이기도합니다. 또 민중들의 지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구성은 동학의 잔당, 수탈을 견디지 못한 농민, 화적의 일부, 그리고 소수의 지식엘리트등으로 복잡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성분이 어떠했든지 간에 상당한 규율을 가지고 조직적으로 움직였으며 그들 나름의 이상을 가지고 있었읍니다. 뒤에 그들이 의병과 합쳐지는 것은 범속한 도둑의 무리가 아니었음을 말해주고 있읍니다』
화가 최연석씨는 불상의 주변을 맴돌면서 스케치하고있었다.
활빈도들은 1890년대말부터 l905년까지 충남북·경남북· 전북등지의 소백산맥을 중심으로 출몰했다.
여러집단이 나누어져 활약했고 큰집단은 2백∼7백명의 무리를 이루기도했다.
그들은 「활빈당발령」 이라는 명령을 내려 지방의 토호들에게 금품과 곡식을 가져올 것을 명했고, 금품이 모아지면 이를 공개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도했다.
『활빈도들이 전혀 소탕되지 않았다는것, 그들의 두목이 잡히지 않았다는 것은 활빈도가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이 일정한 둔소를 가지고 가족의 생계를 꾸려가지 않았다는것은 의적의 면모를 보인것이고 폐정개혁·외세거부를 외친것은 의병의 한모습입니다.』
김씨는 「활빈도」가 역사의 질곡속에 일어난 민중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그러나 활빈도를 오직 대의를 위해 움직였던 집단만으로는 보지 않겠다고한다.
그들은 일부집단에서「위로는 김몽선생과 이칠성·맹감역의 뜻을 따르고」라고 했던 것처럼 도둑적(?)인 일면도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면모가 이 소설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김씨는 눈길을 먼 산등성이로 옮긴다.
말을 탔거나 혹은 뛰면서 화승총과 죽창을 들고 출몰했던 활빈도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일까.
김씨는 이작품을 쓰기 위해 전북 정읍·남원, 충남 비산·보령·홍천, 충북 보은, 경북 경주, 경남 하동·양산등지와 지리산일대를 6개월에 걸쳐 현지답사해 취재했다.
그리고 학계의 연구자료를 수집했고 Y여대를 졸업한 사람을 고용하여 그당시 신문을 스크랩했다.
현장의 체험과 자료, 그리고 그의 상상력이 일대「로망」으로 엮어지면서 80여년전의 활빈도는 작가에 의해 새로운 역사적 위치를 부여받게 될 것이다.
그들의 생동하는 모습, 그 당시 민중의 삶, 역사의 흐름이 한눈에 펼쳐지고 의로운 삶과 죽음·애환이 그려질 것이다.
『서정성을 밑바탕에 깔고 써가고 싶습니다. 주의나 주장을 내세우지 않고 오직 감동을 일으킬수 있도록 그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나이들의 큰 뜻이 있고, 사랑이 있고, 파란의 스토리가 있는 감동의 대하소설 『활빈도』를 작가와 함께 기대해본다.
마애불상에 석양이 비치는 저녁, 작가와 화가는 펼쳐질 이야기를 머리속에 그리며 정적에 잠긴 도솔암을 뒤로하고 비운사로 내려왔다.
한줄기 역사의 바람이 그들을 스쳐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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