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 '인력 독점공급권' 고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2면

항운노조가 독점해온 부산.인천 등 주요 항만의 하역 노무 체제에 대한 전면적인 개편이 계속 미뤄지고 있어 해운 물류 경쟁력 확보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19일 해양수산부와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월 항운노조 비리 사건 이후 항만 인력시장에 경쟁체제를 도입하자는 내용의 노사정 협약이 체결되면서 이에 따른 후속 입법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노조의 반발과 정치권의 미온적인 처리가 이어져 관련 법안의 연내 국회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해양부가 지난달 9일 항만 하역 인력을 자유롭게 채용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골자로 국회에 제출한 '항만인력공급체제 개편 특별법'은 아직까지 법안 심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여기에 항운노조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시키자는 의원입법안까지 제출된 상황이다.

◆ 노조 인력 공급 독점 공방=이번 개편 작업은 조합원 채용비리로 일부 항운노조 간부들이 구속된 것을 계기로 노조 독점의 현행 노무 공급 체제를 뜯어고치기 위해 시작됐다. 최대 쟁점은 노조에 가입해야만 하역에 참여할 수 있는 '클로즈드 숍' 체제의 노조 기득권을 폐지하자는 것. 일선 하역회사들이 노조원들을 상시 근로자로 재고용해(상용화) 독자적으로 하역작업을 벌이면 합리적인 인력공급이 가능해져 경쟁력이 높아진다는 논리다.

해양부는 "항운노조가 100여 년 동안 항만 하역인력 공급을 독점해오면서 노조원들이 고령화되고 과잉인력도 20~30%에 달해 더 이상 구조조정을 미룰 수 없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조는 "일부 간부의 비리를 빌미로 노사정 협약을 밀어붙인 정부가 전반적인 경쟁력 확보 대책은 내놓지 않은 채 그동안 파업 한번 하지 않았던 노조원들만을 대량 감원하려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이처럼 갈등이 계속되자 한나라당 김재원 의원은 노조의 입장을 반영해 노조의 인력 공급권은 그대로 유지한 채 지방노동청에 등록된 근로자만을 하역작업에 투입하도록 하는 내용의 의원입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이번엔 해양부가 "노조의 노무독점권을 아예 법으로 보장해주자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나섰다. 그러나 퇴직 노조원들의 재취업과 생계 보전 등 실질적인 후속대책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 시급한 물류 경쟁력 확보=영국.프랑스 등 유럽에서는 1980년대 말부터 물류 경쟁력 확보를 위해 전통적으로 유지돼왔던 항운노조의 기득권을 없애고 물류 회사들이 자유롭게 노동인력을 고용할 수 있는 개혁을 추진해왔다. 부산항의 경우 이미 2003년에 중국 상하이.선전 등 경쟁항에 추월당하며 세계 3위의 항구에서 5위권으로 내려앉아 해운 물류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다.

홍병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