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심판 홍은아의 '여기는 프리미어리그'] "설기현 2부 있을 선수 아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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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설기현 선수(왼쪽)와 홍은아 통신원이 울버햄튼 선수단버스 앞에서 기념촬영을 했다.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과 이영표(토트넘 홋스퍼) 선수의 맹활약으로 우리에게 부쩍 가까워진 잉글랜드 프로축구. 그런데 이곳에 한국인 최초로 진출한 선수가 누군지 아세요? 예, 바로 설기현(울버햄프턴) 선수입니다.

마침 제가 살고 있는 러프버러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셰필드에서 15일 경기가 열렸어요. 울버햄프턴과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잉글랜드 챔피언십리그(2부 리그)죠. 잉글랜드 프로축구는 시즌이 끝난 뒤 프리미어리그 하위 3팀과 챔피언십리그 상위 3팀이 자리바꿈을 해요. 울버햄프턴은 챔피언십리그 4위, 셰필드는 1위를 달리고 있었어요.

셰필드 역에 내려 (미리 들은 정보대로) 말을 탄 경찰들을 따라 15분 정도 걸으니 경기장이 보였어요. 경기장 주위에 있는 영국 전통 음식 피시 앤드 칩(fish & chip), 핫도그 등을 파는 가게와 맥주를 파는 펍은 셰필드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고요. 셰필드 유나이티드의 홈구장 브라몰 레인 그라운드에 들어서니 예상대로 코너 쪽 군데군데를 제외하고는 관중이 빼곡히 들어찼더군요. 공식 발표된 관중 수는 2만5553명. 프리미어리그 못지않은 꽉 찬 관중석, 탄탄한 지역 연고를 기반으로 한 클럽 운영, 다양한 성격의 기업이 참여한 A보드(광고판) 등을 보고 있으니 잉글랜드 축구의 힘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오른쪽 날개로 선발 출장한 설기현 선수. 경기 내내 과감한 돌파와 동료에게 찔러주는 깔끔한 패스가 돋보였습니다. 그렇지만 울버햄프턴은 전반 16분 골을 허용한 뒤 만회하지 못하고 0-1로 져 6위로 떨어지고 말았어요.

원정 응원 온 서포터스는 한결같이 설기현 선수에 대해 높이 평가하더군요. "그레이트 플레이어(great player)"라는 표현이 제일 많았어요. 기술이나 체력이 모두 뛰어나다고요. 8년째 울버햄프턴을 응원하고 있다는 리 데이는 "설은 우리 팀에 있을 선수가 아니다. 프리미어리그 팀에서 뛰고 있어야 한다"고 극찬을 하더군요. 또 다른 서포터스인 마틴 네이러는 "그가 좋은 선수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더욱 큰 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매 경기 기복 없이 활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더군요. 알고 보니 마틴은 웨일스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현역 선수라네요.

경기 후 선수 출입구에 팬들이 사인을 받으려고 줄을 서 있는데 단연 설기현 선수 인기가 최고였어요. 설 선수와 잠시 얘기를 나눴어요.

-딸 낳으신 것 축하해요. 아기는 언제 봤어요?

"그제 아침에 와이프랑 병원에 있었어요. 훈련 갔다가 왔더니 아기가 나오고 있더라고요."

-장남 인웅이는 축구를 시킬 생각이 있는지.

"글쎄요. 공 차는 걸 상당히 좋아하는데, 아이가 원하는 쪽으로 지원해 주고 싶어요."

-아드보카트 감독님이 곧 설 선수 보러 오신다던데요.

"감독님마다 선호하는 선수나 스타일이 다르니까 사실상 감독님이 바뀔 때마다 대표 선수들 모두 바뀌는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가 있겠죠."

박지성.이영표 선수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에 설 선수는 "확실한 동기 부여가 된다"고 대답했어요. 대표팀 동료가 좋은 활약을 해서 기분 좋고, 자신도 다음 시즌에는 이들과 프리미어리그에서 함께 뛰고 싶다고 했어요.

설기현 선수, 참 든든하죠. 스타답지 않게 겸손하고, 차근차근 자신의 길을 만들어 나가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내년에 독일월드컵과 프리미어리그를 꼭 밟고 싶다"는 설 선수의 바람이 이뤄지기를 기원하며 기숙사로 돌아왔어요. 여러분도 설 선수에게 응원 많이 보내 주세요.

<영국 러프버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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