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사람] "앞 못보는 사람의 좋은 길동무 돼 주세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3면

1급 시각장애인 조남현(29)씨는 항상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차를 타거나 길을 걸을 때, 밥을 먹을 때도 주변을 살펴줄 눈이 아쉽고 손과 발을 이끌어 줄 손길이 그립다.

그러나 편안하게 그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그의 가족과 친구.친지 등 몇 명에 불과하다.

"인간 관계가 가깝거나 멀거나 하는 문제와 다릅니다. 보통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해야 장애인들에게 도움이 되는지 잘 모르는 게 문제죠."

그는 자기를 도우려는 사람들의 행동에 오히려 불편함을 느끼거나 화가 난 경우도 적지 않게 경험했다고 말했다. 때문에 오래 전부터 장애인을 바르게 도와주는 방법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이 조씨의 희망이었다.

그래서 만든 책이 바로 '함께 보면 보여요'다.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흰지팡이의 날'(15일)에 맞춰 14일 출간된 이 책은 생활 속에서 장애인을 돕는 방법을 서술한 일종의 지침서다.

장애인들을 돕자는 감정적 호소를 넘어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한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나온 장애인 관련 서적과는 뚜렷이 차이가 있다는 게 책을 펴낸 출판사 황금가지 측의 설명이다.

2002년부터 대구점자도서관에서 점자 도서의 제작과 시각장애인 장애봉사자 교육을 하고 있는 조씨는 자신과 같은 시각장애인들이 공감하고 있는 사례들을 모았다고 했다.

다음은 이 책에 실린 주요 내용들-.

#인사할 때:상대방의 이름을 소리 내서 부르고 자신의 이름도 반드시 밝혀라. 시각장애인이 목소리를 잘 구별한다며 누군지 맞혀보라고 질문한다면 장애인은 감정이 크게 상한다.

#대화할 때:여럿이 있을 때 누구에게 말하는 지를 확실하게 밝혀라. 대화 상대가 바뀔 때도 그 이름을 말하는 게 좋다. 장애인은 사람의 시선을 보지 못한다. 이것.저것.이쪽.저쪽 같은 막연한 지시어는 삼가라.

#길 안내:장애인의 옷 소매나 지팡이를 무작정 잡아끄는 것은 큰 실례다. 먼저 "도와 드릴까요?"라고 물어야 한다. 장애인에게 자신의 팔을 잡게하고 반보 정도 앞서 간다. 계단 앞에서 일단 멈추고 계단이 있다는 사실을 밝힌다.

#승차를 도울 때:문을 열어 주는 것은 위험하다. 얼마나 열려 있는 지 모르기 때문이다. 장애인의 손을 차문 손잡이에 대 주는 정도로 충분하다.

#식사할 때:그릇의 위치를 시계방향으로 설명하고 손으로 확인하게 한다. 반찬 그릇을 장애인 앞으로 당겨 놓으면 도리어 불편해진다.

조씨는 장애인을 돕는 방법 중 상당 부분이 앞이 보이지 않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면 해법이 보이는 것들이라고 말했다.

대전 출신인 그는 중학교 때 갑자기 시력을 잃었다. 성직자가 되기 위해 나자렛대 신학과에 진학했으나 관심사가 장애인 복지 문제로 바뀌면서 졸업과 함께 성결대 사회복지학과로 편입했다. 그는 두 곳의 대학에서 유일한 시각장애인이었다.

조씨는 "두 대학을 무사히 졸업할 수 있었던 것은 헌신적으로 도와준 친구들 덕분"이라며 "모든 국민이 그 친구들 같다면 시각장애인들은 한결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글=왕희수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