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펜싱 플뢰레 세계선수권서 단체전 첫 금메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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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이 확정된 직후 정길옥·이혜선·남현희·서미정(왼쪽부터)이 태극기를 들고 달리며 기쁨을 나누고 있다. [라이프치히 AFP=연합뉴스]

한국 낭자 검사들의 끈질긴 투혼이 기적 같은 역전 우승을 일궈냈다. 행운도 우리 편이었다.

한 팀에서 세 명씩 나서 상대를 바꿔 3분씩 9라운드를 벌이는 단체전 결승. 18-19로 한 점 뒤진 상태에서 남현희(24.성북구청)가 마지막 9라운드에 나섰다. 상대는 루마니아의 에이스 록사나 스칼라틴. 루마니아는 시간만 보내면 됐고, 한국은 3분 안에 점수를 따야 했다.

신중하게 칼끝을 교환하다 스칼라틴이 선제 공격을 했다. 칼끝이 남현희의 몸통을 정확히 찔렀지만 점수를 알리는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당황한 상대를 향해 남현희가 회심의 찌르기를 성공시켰다. 19-19 동점이 됐고, 승부는 1분 안에 점수를 먼저 따면 이기는 연장으로 넘어갔다.

여기서 또다시 행운이 왔다. 무작위로 정하는 우선권을 한국이 차지한 것이다. 연장에서 득점이 없으면 우선권을 쥔 팀이 이긴다. 초읽기에 몰린 상대가 성급하게 공격했고, 남현희가 주특기인 '콩트르 아타크'(역습)로 승부를 끝내버렸다.

남현희와 서미정(25.전남도청).정길옥(25.강원도청).이혜선(22.한체대)이 출전한 여자 플뢰레 단체전에서 한국은 8강에서 우승 후보 러시아를 23-20으로 꺾었고, 준결승에선 '펜싱 종주국' 프랑스를 40-28로 대파했다.

여자실업 선수가 66명에 불과한 한국 펜싱이 세계선수권 단체전에서 우승한 것은 놀라운 일이다. 한국 펜싱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김영호(남자 플뢰레), 2002년 세계선수권에서 현 희(여자 에페)가 개인전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렇지만 단체전은 네 명의 선수가 고른 기량을 발휘해야 한다. 프랑스.러시아.루마니아 등은 수천 명의 선수 중 대표를 선발한다.

'땅콩' 남현희는 1m54cm의 단신이지만 빠른 발과 과감한 공격으로 우승의 견인차가 됐다. 그는 "이번 쾌거를 계기로 펜싱에 대한 관심이 커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현희는 이번 대회에 함께 출전한 남자 사브르의 원우영(23.서울지하철공사)과 연인 사이다. 개인전 32강전에서 세계 1위를 맞아 14-15로 아깝게 진 원우영은 '동반 입상'을 노리며 14일 단체전에 출전했다.

세계랭킹 2위인 서미정은 발목 부상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진통제를 맞고 경기에 나서는 투혼을 발휘했다. 올해 처음 국가대표에 발탁된 정길옥은 러시아전에서 1-9로 뒤진 상황에서 9-9 동점을 만들어 역전승의 발판을 마련했다. 막내 이혜선은 올해 터키 유니버시아드 개인전에서 우승한 여세를 몰아 과감한 플레이로 제 몫을 했다.

여자 플뢰레 팀은 지난해 프랑스 유학파인 이성우 코치가 맡아 올 2월 서울 그랑프리(2위), 3월 도쿄 그랑프리(3위)에서 잇따라 입상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번 대회 우승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의 청신호다.

김국현 대한펜싱협회 전무는 "2004년 아테네올림픽 노 메달의 원인을 면밀히 분석했고, 신진 선수 위주로 대표팀을 개편했다. 내년 초까지 유럽에서 최고 수준의 코치를 영입해 대표팀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말했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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