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한 50~60대 지혜 활용, ‘창업=성공’ 등식 만들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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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21면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서울신용보증재단 회의실에서 강진섭 이사장이 올해 추진할 창업지원사업을 설명하고 있다. 최정동 기자

성공할 자신이 있는데 사업자금이 부족하다. 금융기관을 이용하자니 금리가 부담스럽고 담보도 없다. 이런 상황에 처한 소기업·소상공인들은 “성공할 수 있다. 성공하면 갚을 테니 돈 좀 빌려 달라”고 하소연하고 싶어진다. 이런 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담보를 서줘 은행 돈을 쉽게 쓸 수 있게 돕는 곳이 있다. 서울시 산하 서울신용보증재단이다. 사업자금에 목마른 영세 상공인들에게는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창업 전도사’ 나선 서울신용보증재단 강진섭 이사장

설립 16년째인 서울신용보증재단은 지난해 말 강진섭(58) 전 KB금융그룹본부장을 새 이사장으로 맞았다. 강 이사장은 1986년 KB국민은행에 입사해 신금융사업본부장, HR그룹 본부장 등을 역임한 금융전문가다. 그는 2004년 청와대 파견 근무 시절 일자리 창출 업무에 발을 들인 뒤 2005년엔 대규모 구조조정으로 퇴직하는 직원들을 위해 퇴직자 재활을 돕는 업무를 맡아 성과를 냈다. 중앙SUNDAY는 지난 20일 서울 마포구에 있는 서울신용보증재단을 찾아 그의 구상을 들어봤다. 그는 서울신용보증재단 이사장 3년 임기 동안 재단을 대출 지원 기관에서 창업 플랫폼으로 변신시킬 계획을 갖고 있었다.

소기업·소상공인에 15년간 총 11조원 지원
-서울신용보증재단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무슨 일을 하는 곳인가.
“서울시가 출연한 유일한 금융기관이다. 담보가 부족한 소기업·소상공인을 위해 신용보증서를 발급해준다. 이 보증서를 갖고 은행에 가면 쉽게 대출받을 수 있다. 대출금 떼일 리스크를 우리가 안음으로써 소기업·소상공인의 자금 숨통을 틔워주는 것이다. 서울시 산하 기관이지만 공장이 인천·경기도에 있는 기업도 본사가 서울에 있으면 우리 재단을 이용할 수 있다.”

-재단도 리스크 관리를 해야 할 텐데.
“재단은 수익을 목적으로 하지 않지만 더 많은 이에게 혜택을 주기 위해서라도 자본금 유지를 잘해야 한다. 심사 업무가 제일 중요하다. 상환 의지가 없는 사람들을 잘 골라내야 한다. 서울에 소기업·소상공인이 현재 70만 명가량 된다. 서울 경제의 풀뿌리 주체들이다. 이들의 사업이 원활해야 경제 생태계가 제대로 돌아간다. 재단에서는 지난 15년 동안 50만 고객에게 11조2500억원을 보증 지원해줬다.”

-예산이 무척 많겠다.
“1999년 설립된 뒤 지난해까지 총 7884억원이 조성됐다. 이 중 금융기관이 44%, 서울시가 40%, 나머지 16%는 정부와 자치구가 냈다. 누적결손금 2314억원을 제하고 현재 기본 자산, 즉 자본금으로 5570억원을 보유하고 있다. 보통 기본 자산의 6~7배가량 보증을 선다. 현재 17만 건 3조2000억원을 보증자산으로 갖고 있다. 고객이 그만큼의 은행 돈을 대출해 쓰고 있다는 얘기다. 평균 대손율은 3.5%가량 된다. 100억원을 보증 서면 3억5000만원 정도 떼인다.”

-소기업·소상공인들에게는 자금 말고도 필요한 게 많다.
“판매망·홍보·고객관리·세무·인사·법률 등 다양한 지식과 정보가 필요하다. 이를 종합 지원하려고 한다. 예를 들어 대형 수퍼마켓이 들어오면 골목상권이 위기에 처한다. 이에 맞설 수 있도록 동네 수퍼마켓 한 곳당 250만원씩 지원해주는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간판·진열대·냉장고를 바꿔 판매 환경을 바꿔놓으면 경쟁력이 크게 올라간다. 지난해엔 도봉구와 노원구에 디아브랑제라는 빵집 브랜드를 만들었다. 자연 발효 노하우로 맛있는 빵을 만드는 기술을 가진 사람에게 1억원을 들여 기계를 사고 인근 10개 업체가 이 기술을 공동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열 곳 모두 프랜차이즈 제과점에 밀리지 않고 장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은퇴자와 창업자가 상생할 수 있어
-종합지원을 재단의 역량으로 모두 감당할 수 있나.
“퇴직자 재활용 프로그램을 도입할 계획이다. 우리 재단은 서울시 전체 업종 지도를 만드는 일을 한다. 어느 구에 치킨집이 많은지, 커피숍이 많은지 알 수 있다. 이 업무를 정밀하게 할 계획이다. 50~60대 퇴직자 중 식견과 지혜가 뛰어난 분이 많다. 이분들이 참여해 ‘종로구 커피숍 전문가’ ‘강남구 곰탕집 전문가’가 되면 소상공인들에게 큰 도움이 된다. 창업 전에 이분을 찾아가면 ‘종로구의 커피숍은 몇 개, 경쟁률 얼마, 유동인구 얼마, 수익률 전망치는 얼마’를 속 시원하게 들을 수 있다. 퇴직자들이 한 업종에 매달려 3년가량 공부하면 현장 전문가가 된다. ‘빵집을 하려면 서초구 말고 금천구 무슨 동으로 가라’ ‘은평구에서 창업하려면 치킨집 말고 순댓국집이 낫다’ 같은 컨설팅이 가능하다. 구마다, 업종마다 수없이 많은 전문가가 활동할 수 있다. 이들에게 소정의 활동비를 지급할 계획도 있다. 퇴직자들은 은퇴 고독 속에서 늙어가지 않고 활동인구로 재편입되고 창업자들은 실질적인 도움을 얻어 성공 확률을 높일 수 있다. 재단을 이들이 활동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변신시킬 계획이다.”

-창업 희망자가 전문가의 존재를 알기 어렵지 않나.
“구별 업종 전문가들의 리스트와 연락처를 모은 애플리케이션을 만들 계획이다. 이 앱에는 각종 정부기관이나 지자체에 흩어져 있는 퇴직자 지원 프로그램도 모두 정리해 놓을 생각이다. ‘창업자의 네이버’ 같은 앱이다. 이런 앱이 생기면 창업이 수월해지고 성공확률은 높아지며 은퇴 인력을 활용할 수 있다. 은퇴자의 경험과 창업자의 열정이 상승하는 것이다. 올해를 퇴직자와 창업자를 연결하는 플랫폼 구축의 원년으로 삼을 계획이다.”

박태희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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