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 Sunday] 대법원과 헌재의 ‘다른 생각’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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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1호 31면

이석기(51)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상고심 선고가 나온 지난 22일 검사 출신 변호사 A와의 대화.

-내란음모 혐의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했네요.
“글쎄요. 강도짓을 하겠다고 칼과 노끈을 샀다면 이미 예비죄가 되죠.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칼과 노끈을 사자고 대화를 나눴다면 현행법상 음모죄가 구성된 걸로 봐야 합니다.”

-음모죄의 구성요건이 너무 허술해요. 처벌하는 나라가 많지도 않지만 있더라도 총칙에 일률적으로 규정한 게 아니라 각칙에 구체적 처벌 대상을 적시하고 있어요.
“오케이. 입법상의 미비에 대해선 이 기자 말에 동의해요. 하지만 현행법이 그렇게 돼 있으면 법대로 판단해야죠. 내란음모죄란 이름의 무게 때문에 강도음모죄와 다른 잣대를 들이댄다면 지나치게 기교적인 판결 아닐까요?”

-왜 대법원이 이렇게 판단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
“뭔가 다른 생각이 있었겠지요. 하하하.”
불과 한 달 전에도 이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역시 법조인과의 대화에서였다.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내려진 다음 날, 헌법재판연구관을 지낸 변호사 B씨와의 대화.

-결정문 읽어보셨어요? 평석(評釋·판례 비평)을 해보신다면요?
“헌재의 결정은 논리적 흠결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결정문을 읽어봤는데 앞뒤가 잘 안 맞는 구석이 있더군요. 정당해산 목적에 대해선 학계 주류 의견대로 ‘정당보호 이론’을 채택하면서도 해산 결정을 내린 논리는 ‘방어적 민주주의 이론’이었어요. 결론에 동의하진 않더라도 논리는 수긍이 가야 하는데 글쎄요. 전 수긍하기 어렵더군요.”

-왜 이런 논리를 만들어냈을까요?
“뭔가 다른 생각이 있었겠지요. 하하하.”

두 변호사 모두 ‘다른 생각’이 뭘 의미하는지 대놓고 말하진 않았다. 하지만 신뢰의 벽에 금이 가고 있음은 짐작할 수 있었다. 헌법이 정한 최고재판소와 유일무이한 헌법 해석기관의 진정성에 대해 법조인들도 의심하기 시작한 것이다.

‘다른 생각’이란 말을 곱씹으며 불순한 상상을 해봤다. 만약 대법원이 헌재와의 권한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 법리 대신 정무적 판단을 내린 거라면? 만약 헌재가 같은 이유로 법원의 최종 판단이 나오기도 전에 서둘러 결정을 내린 거라면?

이 상상이 말 그대로 ‘불순한’ 상상에 그치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의와 인권의 최후 보루가 돼야 할 두 기관에 조금이라도 불신의 그림자가 드리우면 국가 전체의 불행이다. 법관의 사표(師表)로 불리는 가인 김병로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법관이 국민으로부터 의심받게 된다면 최대의 명예 손상이 될 것이다. 정의를 위해 굶어 죽는 것이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수만 배 명예롭다. 법관은 최후까지 오직 ‘정의의 변호사’가 돼야 한다.”

이동현 사회부문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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