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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1명당 219만원 … 어린이집 '권리금 매매' 기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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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원아 모집 수월합니다. (아이들) 꽉 차 있어요.” “아파트 관리동에 있고 소형 평수 많아 아이들 충분합니다.”

 어린이집을 사고판다는 i인터넷 사이트는 이런 문구를 내걸었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의 A어린이집은 권리금만 1억7000만원이 붙어 있다. 이 사이트 게시판에 글을 올린 어린이집 매매 중개업자는 “400가구가 사는 아파트 단지이며, 어린이집은 관리동에 있어 권리금이 좀 세다”고 말했다. 권리금은 현재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원장에게서 운영권을 넘겨받기 위해 지불하는 돈이다.

 어린이집 매매가 인터넷을 통해 은밀하게 이뤄지고 있다. 육아정책연구소 조사 결과 민간·가정어린이집 552곳 중 169곳(36.7%)의 운영자가 권리금을 지불한 것으로 드러났다. 아동 한 명당 평균 219만원이 권리금으로 오갔다. 어린이집 인원이 많을수록 권리금은 높아진다.

 서울 구로구 고척동의 B어린이집은 ‘보증금 2000만, 월세 85만, 권리금 1억4000만, 원아는 40여 명’이다. 기자가 사이트 운영자에게 전화해보니 “매수 의향이 있으면 원장과 만날 장소를 알선해준다. 권리금 거래가 소문날까봐 미리 원장 이름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말했다. 양미선 육아정책연구소 동향분석통계팀장은 “권리금 거래는 암묵적으로 이뤄져 적발이 쉽지 않다. 문건상으로 남는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고 지적했다.

 어린이집 매매를 둘러싼 권리금 거래는 결국 아이들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 어린이집을 사들인 원장이 투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보육교사 월급을 깎거나 질 낮은 급식재료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 조사 결과 일부 어린이집은 교사 정원을 채우기 위해 원장의 가족이나 친척을 교사로 허위 등록하는 등 내부 거래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종건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민간 어린이집 수가 너무 많아 매매가 음성적으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행 영유아보육법엔 권리금을 주고받는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는 조항이 없는 실정이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학부모들이 선호하는 국공립 어린이집을 새로 지으려고 해도 기존 어린이집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문을 연 서울 서대문구의 한 구립 어린이집의 다섯 살 아동을 위한 학급은 주변 어린이집 등의 반발에 밀려 여태껏 설치되지 못한 상태다. 서울 서대문구청 관계자는 “지난해 국공립 어린이집 두 곳이 지어지는 과정에서 민간 어린이집 원장들이 방문해 반대한다는 민원을 넣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관계자도 “민간 어린이집은 자기 시설을 팔지도 않으면서 새로 짓지도 못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한국민간어린이집연합회 관계자는 “민간 어린이집이 있는 곳에 국공립 시설을 짓는 일 자체가 효율성이 떨어지는 데다 민간 어린이집도 어렵게 한다”고 해명했다.

정종훈·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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