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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익대·아헨공대, 디자인·공학 융합 수업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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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산업디자인학과 학생들과 독일 아헨공대 학생들이 지난 19일 아헨공대 연구실에서 자동차 바닥을 벌집모양 구조로 만드는 디자인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학기중에 ‘디자인·공학 협업 제품개발’ 화상 수업을 듣고 방학엔 10박11일씩 양국을 방문하며 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사진 홍익대]

박슬아(29·여)씨는 자동차 디자이너다. 2012년 12월 독일 아우디 잉골슈타트 본사에 취업했다. 엔지니어와 소통하며 자동차 외부 디자인을 스케치한다. 디자인에만 ‘꽂힌’ 홍익대 산업디자인학과 재학 시절 그를 바꿔놓은 건 한국·독일 공대생과 어울리며 3륜 전기자전거 모형을 만들었던 교환 수업. 그는 “공방에 홀로 앉아 스케치부터 제작까지 파고들다 보면 ‘내 작품이 최고’란 착각에 빠지기 쉬운데 공대생들과 소통하며 ‘디자인 뿐 아니라 기능도 중요하다’는 생각을 처음 갖게됐다”고 설명했다.

 하정석(29)씨는 자동차 엔지니어다. 2012년 12월 현대차 디자인팀에 스튜디오엔지니어(SE)로 입사했다. 디자이너가 고안한 자동차 디자인을 검토해 실제 제작 가능하도록 구현하는 일이다.

그도 홍익대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 재학 시절 박씨와 같은 교환 수업을 들었다. 당시 수업에선 ‘기타를 만들라’는 과제가 주어졌는데 공학도로선 상상하기 어려운 실험적인 디자인을 내놓는 디자인 전공 학생들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그는 “엔지니어와 디자이너는 서로 쓰는 언어부터 생각까지 많은 부분에서 다르다. 엔지니어로서 부족할 수 있는 디자인 감각, 디자이너와의 의사소통 능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홍익대가 2008년 도입한 ‘디자인·공학 협업 제품개발’ 수업을 통해 ‘융합형 인재’를 키워내고 있다. 독일 아헨공대와 제휴해 1학기(3학점) 동안 진행하는 수업이다. 이 대학 기계과 10명, 디자인과 10명, 아헨공대생 10명 등 총 30명이 수강한다. 학기 중엔 영어로 화상 수업을 진행한다. 방학 땐 10박 11일 일정으로 한국·독일을 교차 방문하며 팀 프로젝트 과제를 완수한다. 임현준 기계과 교수는 “실무에선 엔지니어와 디자이너가 협업하는 경우가 많은데 막상 대학에선 학과별 칸막이 때문에 함께 수업받을 기회가 드물다. 융합 수업을 통해 실전에서 일할 수 있는 인재를 키워낸다”고 소개했다.

 아헨공대는 제조업 강국인 독일에서 ‘아헨 마피아’로 불릴 정도로 제조업에 강점을 가진 학교다. 교환 수업은 홍대 재학생들이 GM 페이스(PACE) 프로젝트(GM이 세계 50여개 대학을 선정해 제공하는 자동차 개발 교육 프로그램) 국제 포럼에서 좋은 성적을 내자 아헨공대 측이 “우리와 수업을 함께 해 보자”고 제안해 시작됐다.

6명씩 한 팀을 이뤄 기업으로부터 ‘3륜 전기자전거를 만들라’, ‘새로운 형태의 샤워부스를 디자인하라’는 과제를 받아 수행하는 식으로 진행해 왔다. 3~4학년 중 영어·전공 실력과 수업에 대한 열의를 바탕으로 선발한다.

이근 디자인과 교수는 “독일 방문 기간 동안 거의 밤을 새워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하는 힘겨운 프로그램이지만 취업 실적이 좋고 네트워크까지 쌓을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져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물리적 학과 통합은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엄연히 공대는 공대고, 디자인과는 디자인과라 4년 동안 한 과의 전공지식만 가르치기도 벅차다. 전공지식보다 협업하며 문제를 어떻게 풀어가느냐 하는 ‘태도’를 가르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수업을 듣고난 200여 명의 졸업생 중 상당수는 현대기아차 등 국내 업체뿐 아니라 미국 GM, 독일 벤츠·폭스바겐·아우디·포르쉐 등 본사에 취업했다.

2011년 수업을 들었던 김경태(28) 기아차 디자인센터 연구원은 “디자이너는 새롭고 멋진 외형 디자인을, 엔지니어는 역학적으로 튼튼하고 만들기 쉬운 제품을 선호한다”며 “입사 면접 때 ‘하이브리드차 성격에 맞는 디자인을 제시하라’는 과제가 주어졌는데 물흐르는 듯한 디자인을 강조한 디자인 전공 지원자들과 달리 공학적 측면에서 ‘공기저항계수를 줄이려면 특정 부분을 각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답했더니 신선하게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포르쉐 본사 디자이너로 일하는 정우성(37)씨는 “글로벌 완성차 업체 본사엔 외국 유학 경험이 없는 한국 디자이너가 드문데 이 수업 출신 토종 디자이너는 유럽 곳곳에 진출했다”고 자랑했다.

 이 수업 외에도 기계과에선 30여년 동안 산업 디자이너로 일한 빌 드레셀하우스 교수를 초빙해 학생들의 디자인 감각을 키워주고 있다. ‘친환경제품개발’ 등 4개 제품 디자인 수업을 진행하며 엔지니어로서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법을 가르친다.

 홍익대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 융합 전공 신설 대신에 재학생들이 복수 전공으로 융합 전공을 선택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많이 주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올해 신설한 공연예술·문화예술경영이다. 공연예술 전공은 이론·실기로 나눠 실용음악이나 뮤지컬 창작부터 연기, 공연 기획·연출까지 배울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구성했다. 문화예술경영 전공은 문과대·미술대·경영대가 협력해 현대문학·문학과영화(문과대), 포스트모더니즘미술론(미대), 회계원리·마케팅(경영대) 등을 가르친다. 고희경 공연예술 전공 교수는 “2019학년도까지 서울·세종캠퍼스 신입생의 40%를 캠퍼스 자율전공으로 모집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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