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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쓴 골리앗, 수렁 빠진 팀 건져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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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지난 1일 삼성전에서 코뼈가 부러진 하승진이 3주만에 복귀전을 치렀다. 하승진은 수술도 미룬 채 안면보호대를 하고 경기에 나서는 투혼을 발휘했다. 22일 부산에서 열린 kt전에서 하승진(왼쪽)이 김승원을 앞에 두고 슈팅을 하고 있다. [사진 KBL]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서야죠.”

 22일 부산 사직체육관에서 프로농구 KCC와 kt의 경기가 열리기 1시간 전. ‘마스크 쓴 골리앗’ 하승진(31·KCC·2m21cm)의 표정은 밝았다. 하지만 그의 코에는 붉은 수술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하승진은 지난 1일 삼성전에서 상대 팔꿈치에 맞아 코뼈가 부러졌다. 라커룸으로 걸어가는 하승진을 향해 한 여성팬이 “다리라도 부러진 줄 알았네”라고 야유를 보냈고, 격분한 하승진은 관중석으로 돌진하려다 저지당했다. 종아리를 다친 뒤 3주 만의 복귀전에서 코뼈 골절을 당한 하승진은 라커룸 밖까지 울음소리가 들릴 만큼 대성통곡했다.

 프로 선수가 팬에게 감정적으로 대응한 건 잘못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여성 팬이 지나쳤다는 목소리가 더 컸다. 그래서 프로농구연맹은 지난 6일 하승진에게 징계 중 가장 낮은 견책 처분을 했다.

 당초 코뼈 시술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하승진은 알고 보니 코뼈가 산산조각나는 분쇄 골절로 수술을 받았다. 홍성홍 KCC 트레이너는 22일 “승진이는 코에 고정용 심을 박고, 코 주변에 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였다”며 “부상 사흘 뒤에야 처음으로 식사를 했다”고 전했다.

 그 동안 “내가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라며 인터뷰 요청을 모두 거절한 하승진은 묵묵히 재활했다. 이날 3주 만에 코트에 모습을 드러낸 하승진은 “코가 부으면 수술 시기를 늦출 수밖에 없기 때문에 다친 날 누워서 못 자고 앉아서 잤다. 다음날 전신마취 후 코 수술을 받았다”고 말했다.

 국내 프로농구 최장신 센터 하승진은 올 시즌 개막 전 “2년 동안 병역의 임무를 수행하느라 농구에 굶주렸다”고 말했다. 올 시즌 코트에 복귀한 하승진은 체중도 15kg나 줄였다. 2012년 결혼한 하승진은 두 살배기 아들 지훈이의 아빠로서 책임감도 느꼈다. 하지만 일부 팬들은 잦은 부상을 당하는 하승진을 향해 ‘유리몸’ ‘식물인간’이라고 비난했다. 하승진은 퇴행성 허리디스크에 퇴행성 관절염까지 앓고 있다. 양쪽 발목 인대가 거의 다 끊어지고, 굵은 인대 하나씩만 남아 있는 상태다. 하승진은 팬들의 비난에 몸보다 마음이 더 아팠다.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하승진은 병역이 해결돼 대표팀 발탁을 기피한다는 비난을 받았다. 2년 반 동안 실전 경험이 없었던 하승진이 대표팀에 도움이 안 될 거라 생각해 차출을 고사한 게 오해를 불렀다. 하승진은 대표팀 차출에 흔쾌히 응한 누나 하은주(신한은행·2m)처럼 애국심이 강한 선수다. 당시 하승진은 인터넷 농구 커뮤니티 사이트에 ‘남들보다 큰 덩치, 남들보다 약한 몸, 남들보다 못난 외모, 이게 욕먹을 짓입니까’라는 내용의 글을 올리기도 했다.

 추승균(41) KCC 코치는 “장신 선수들은 심한 파울을 당해도 엄살을 부린다고 오해 받기도 한다. 서장훈(2m7cm·은퇴)도 승진이도 그렇다”며 “키가 큰 게 죄는 아니지 않나”라고 안쓰러워했다.

 최근 팬들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았다는 하승진은 “‘날 응원해주는 분들도 있구나’란 생각에 큰 감동을 받았다.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날 안면보호대를 차고 나선 하승진은 “경기에 집중하면 잊을 수 있을 것 같다”며 이를 악물었다. KCC는 74-85로 졌지만, 하승진은 26분57초간 뛰며 15점·4리바운드로 분전했다. 모비스는 선두 SK를 80-75로 꺾고 1위를 탈환했다.

부산=박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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