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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정쩡한 QE 규모 … 유럽 경기 부양엔 부족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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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가 ‘머니 바주카포(양적 완화)’를 쐈다. 월간 600억 유로(75조4000억원)를 새로 찍어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국채 등을 사들이고 했다. 블룸버그 통신 등은 이날 전문가들의 말을 빌려 “드라기가 유럽중앙은행(ECB) 매파들의 견제를 뛰어넘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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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매파는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다. 그는 자산매입보다 “임금을 낮춰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는 게 바람직한 처방”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ECB의 최대 주주인 독일을 대표한다. ECB CEO 격인 드라기가 최대 주주 독일의 반대를 넘어서기는 했지만 그의 반대 흔적이 QE 세부 사항 곳곳에서 발견됐다.

 우선 ECB의 월간 QE 규모는 달러로 계산하면 690억 달러 정도다. 미국 양적완화(3차 기준)의 81.1%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일본은행(BOJ)이 현재 사들이고 있는 자산(565억 달러)보다는 많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 규모는 유로존의 40% 정도다.

 게다가 ECB의 돈 풀기는 현재 일본이나 3차 QE 시절의 미국처럼 무기한이 아니다. 블룸버그는 “은행 실무자들이 최장 2년까지 QE를 실시하는 방안을 통화정책회의 올렸다”며 “하지만 이날 위원회는 19개월 동안만 하기로 결정했다”고 전했다.

 키프러스 출신인 아타나시오스 오파니데스 미 MIT대 교수(경제학)는 하루 전인 21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미국 QE3가 아주 좋은 성과를 냈다’며 “무기한 자산매입이었다는 점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ECB의 이번 QE 규모는 1조1400억 유로(약 1조3200억 달러) 정도다.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실시한 QE3의 1조6000억 달러보다는 2800억 달러 정도 적다. 또 애초 시장이 예상한 2년간 1조2000억 유로를 할 것이란 예상에도 미치지 못했다.

 게다가 오파니데스 교수가 제시한 금액보다는 더 적다. 그는 “ECB가 2조 유로(약 2조2300억 달러) 정도를 풀어야 기대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말했다. 유로존 실물 경제 상황이 너무나 심각해서다. 지난해 3분기 성장률(전분기 대비) 0.2%에 그쳤다. 조금씩 나아졌지만 여전히 침체 상태다. 그리스 등 남유럽 침체는 더 깊다.

 유로존의 지난해 12월 물가는 한해 전과 견줘 0.2% 떨어졌다. 국제원유와 식료품 값을 빼면 아직 디플레이션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로존 상황이 ‘로플레이션(Lowflation)’ 상태”로 진단했다. 물가 상승률이 낮은 단계다. 디플레이션 일보 직전인 셈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수석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는 최근 본지와 인터뷰에서 “(본격적인 디플레이션보다) 더 위험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톰슨로이터는“ECB가 디플레이션 우려가 없을 때 실시한 미국의 QE3 규모에도 못 미치는 자산매입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글로벌 시장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라고 했다. 다만 유로값만 떨어지고 있다. 이날 유로화 값은 1.15 달러 선까지 내려갔다. 11년 만에 최저 수준이다.

 그 바람에 주변국들의 긴장만 고조됐다. 21일 캐나다 중앙은행은 1%이던 기준 금리를 0.75%로 내렸다. 블룸버그가 사전 조사한 전문가 설문 조사에서 인하를 예측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ECB의 QE 를 예상하고 선제대응하고 나선 것이다.

 스위스·덴마크·노르웨이 등은 캐나다 중앙은행보다 한 발 앞서 대응했다. 지난주 말 스위스는 ‘유로당 1.2스위스프랑’을 더 이상 방어하지 않기로 했다. 노르웨이·덴마크도 수출 경쟁력을 위해 기준금리를 내렸다. ECB발 통화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강남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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