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프란체스카여사, 비망록 33년만에 처음 공개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대전으로 남하한뒤 대통령은 침실머리맡에 모젤권총 한자루를 놓고자는 습관이 생겼다.
나는 차디찬, 그리고 싸늘한 총구가 기분나빴다. 나의 이런 표정을 읽은 대통령은 『최후의 순간 공산당 서너놈을 쏜뒤에 우리 둘을 하느님 곁으로 데려다 줄 티킷이야』라며 내손을꼭 잡았다.
그뒤부터 잠자리에 들기전 나는 『우리 두사람 티킷은 갈 간수했어?』하면 『잘있지』하며 크게 웃곤했다. 7월1일 상오3시, 아직 어둠은 걷히지 않았다. 황규면비서가 대통령을 깨웠다. 공산군탱크가 이미 수원을 지나 빠른 속도로 남진하고 있다는 긴급보고였다.

<티킷 잘 간수했어요>
보고를 받고난지 20분쯤뒤 미대사관 1등서기관「해럴드·노블」이 관저로 달려와 대전이남으로 옮겨야 된다고 대통령을 설득했다. 신국방장관과 정일권장군도 이내 도착했다. 하나같이 침통한 표정들이었다.
대통령은 차라리 대전에서 죽는게 낫지 더이상 남쪽으로 내려가 경멸을 당하지는 않겠다며 대전사수를 고집했다.
침실로 들어가 문을 걸어잠근 대통령은 책상위에 두손을 올리고 기도하는 자세였다. 그의 얼굴은 불행한 국민들에 대한 연민의 정과 잇단 패전에 대한 분노, 그러나 그에게는 당장 상황을 뒤바꿀 어떤 대책이 있을 수도 없었다.
대통령은 노트를 꺼내 내게 건네주며 메모를 부탁했다. 나는 조용히 그가 부르는대로 받아 적었다. 『죽음이 결코 두려운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떻게 죽느냐가 문제다. 나는 자유와민주제단에 생명을 바치려니와 나의 존경하는 민주국민들도 끝까지 싸워 남북통일을 이룩해야 할 것이다. 다만 후사없이 죽는게 선영에 죄지은 불효자일 뿐이다.』
나는 최후에 대비한 그의 유서라고 생각했다. 『후사없는 불효자』란 대목은 곧바로 비수가 되어 내가슴을 갈기갈기 찢었다.
밖에서는 후득후득 빗방울이 지고 있었다. 대통령을 다시 만난 「노블」은 『정부의 계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선 대전사수 보다 남쪽으로 옮겨 앞으로의 대책을 세우는게 시급하다』며 애원에 가까운 설득을 했다. 신장관도 거의 울음섞인 목소리로 남하를 권유했다.
빗줄기는 어느새 장마비로 바뀌어 억수같이 내리붓고 있었다. 이 빗속을 뚫고 우리는 또다시 목포를 향해 떠났다.
대통령과 나, 김장흥총경이 한차에 탓고 황비서·이철원공보처장·김옥자씨(나의개인비서)가 다른 지프에, 그리고 경호경찰 4명이 맨뒤에 따랐다.
길이 워낙 험해 차도 사람도 몸살을 앓을 정도였다. 이리에 도착하고서야 우리를 뒤따르던 경호관들의 지프가 고장이 나서 1시간쯤 처진 것을 알았다.

<때절어 말아닌 행색>
자동차로 목포까지 가기는 무리인 것 같았다. 이리역장에게 기차편을 요구했다. 역장은 모든 기관차와 객차는 징발되었고, 교통장관의 명령이 없이는 어느 누구에게도 기차를 내놓을 수 없다는 완고한 대답이었다.
황비서가 철도전화로 대전을 불렀다. 잠시후 김석관장관이 나와 곧 열차를 준비하겠다고했다.
기차가 준비되는 동안 우리일행은 역구내에서 요기를 했다. 황비서가 주변매점을 찾아다니며 건빵을 한아름 사왔다. 나는 한개도 먹지않았다. 다른 사람들도 별로 입에 당기지 않는듯 억지로 한두개를 우물우물 씹고 있었다.
그러나 대통령은 『어 거참, 별미네. 맛있는데』하며 한봉지를 눈깜짝할 사이에 비웠다. 그리고는 나를 향해 『마미, 당신도 먹어봐요. 아주 맛있거든…』하는 것이었다.
열차는 목포역 구내에 접어들고 있었다. 김장흥총경은 기차를 역구내에서 5백m쯤 떨어진곳에 세우게 한뒤 단신 목포경비사령부를 찾아갔다.
대통령의 바바리코트는 때에 절었고 파나마모자테도 새까맣게 더럽혀져 있었다. 모든 이들의 행색이 말이 아니었다. 누가 보아도 대통령일행으로 볼 사람은 없었다.

<기차편 못 내놓겠다>
김총경이 혼자 사령부를 방문한 것은 이런 행색으로 사령부에 나타났다가 경비군인들로부터 대통령이 봉변이라도 당하지 않을까하는 속셈에서 였다.
김총경이 대퉁령을 비밀히 부산으로 모실테니 배를 내달라고하자 역시 사령관 정경모대령은 의심하는 눈치였다.
사전에 아무런 연락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직접 대통령을 만나뵈야겠다고 버텼다. 김총경은 정사령관과 지프를 타고 대통령이 있는곳으로 달렸다.
정사령관은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색안경을 낀 대통령을 알아보자 그 앞에서 부동자세로 신고를 했다. 그 목소리는 약간 떨리는 듯 했다.
대통령은 정사령관을 가까이 불러 『내가 부산으로 조용히 가고싶네. 자네가 수고를 좀 해주어야 겠어』하자 정사령관은 『점심은 드셨읍니까』고 물었다.
『이판에 점심은 무슨 점심』하니 그는 차를 몰고나가 역전다방에서 홍차를 사고 토마토등 간단히 먹을 음식들을 사들고 왔다.
부산뱃길은 풍랑이 심했다. 나는 토마토 몇쪽 먹은 것까지 모두 토했고 다른 사람들도 배멀미에 여기저기 쓰러졌다.

<남하길 수행원격려>
오직 자세를 흐트리지 않고 꿋꿋이 버티는 건 대통령 한분 뿐이었다. 나는 70노인네가 저럴수 있나하고 놀랐다.
『아랫배에 힘을 주고 어머니의 인자한 모습을 그려보게나. 울렁거리는 속이 가라앉을테니.』 눈한번 안붙이고 대통령은 오히려 수행원들을 격려했다.
함정에서는 군인식사와 똑같이 했다. 꽁보리밥에 짠지·된장덩이가 전부였다. 모두가 음식냄새조차 맡기 싫어했다. 대통령은 밥한알 안 남기고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웠다
7월2일 상오11시 배는 부산부두에 닻을 내렸다. 1주일을 머무르는 동안 전선은 자꾸만 뒤로 밀린다는 암담한 전황만 들어오고 있었다. 미군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신뢰도 점점 떨어져갔다. 미군은 적의 탱크를 맞아 무슨 폭탄을 써야 하는지도 몰랐다. 공산군의 탱크는 미군의 공격을 받고도 끄떡 않고 밀려오는 것이었다. 때문에 미군들의 공산군 탱크에 대한 공포심만 자꾸 눈처럼 불어났다.
『정신상태야, 정신상태! 엉청한 것들! 우리 아이들(군인)이나 경찰에게 그들이 가진 무기와 장비를 주어봐. 이처럼 후퇴하기에 바쁘진 않을거야.』 대통령은 「멍청한 양코장이들」이란 말을 몇번이고 되뇌며 책상을 주먹으로 쳤다. <정리=고정웅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