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당 탄생 100년 새롭게 찾은 시 ⑥ 청화스님의 두견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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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당의 육필 원고

청화스님의 두견새
- 서정주(1915∼2000)

국보급 부처님을 모신 절깐의 주지스님이

그 국보급 부처님을 훔쳐내다 팔아먹었다는 혐의로

경찰서에 붙잡혀가 문초를 받고 있었는데

“예, 예, 제가 훔쳤습니다. 잘못했습니다” 해서,

일건(一件) 서류와 함께 검찰청으로 넘기려는 판에

경찰서장이 제일로 믿는

이 고을의 큰 유지 부자가 찾어와서

“이 분은 부처님이요. 내가 보증서겠소.

큰 코 다치지 않으랴거던

어서 석방해 드리시오” 해서,

그 말씀을 믿고 풀어주었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오래잖어 진범인은

따로 나타나게 되었드라나.

이 스님은 그 뒤 더 많이 서러워져서

하로에 한 끄니씩만 밥은 자시고

밤잠도 깡그리 앉어서만 주무시기

15년이 되었는데 말이네,

이 세상에서 제일로 슬피 우는 새

그놈의 두견새떼가 말이네

어떻게나 많이 이 스님의 절 수풀 속으로만 모여드는지

내가 가서 하로밤 지새던 때에도

뼈마디 마디 속까지

되게 사무치게는 울어대고 있더군!

※1992년 5월 2일에 쓴 시.

청화스님은 계행이 높았다. 오래 앉아 생활하고 눕지 않았으며 점심 공양 한 끼만으로 살았다. 세속 나이 미당보다 9년 아래지만 스님 존경하는 미당 마음 애틋하다. 도인은 벌써 억울함 초월했는데 시인은 사바세계의 실상을 ‘슬픔’으로 묘파한다. 청정 수도승은 왜 누명을 쓰고 스스로 벌 받고자 했을까. 전생에 부처님은 왜 배고픈 호랑이에게 자기 몸을 던지셨을까. 중생 가여워 한 그 마음, 시인의 눈엔 보였던 게다. 이런 스님과 시인, 그리운 세상이다. <윤재웅·동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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