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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양선희의 시시각각

자원외교가 아니라 정치가 문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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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양선희
양선희 기자 중앙일보
양선희
논설위원

볼리비아 우유니 염호(鹽湖)의 리튬광산 얘기를 처음 들었던 건 2000년대 중반이었다. 당시 대한광업진흥공사(현 한국광물자원공사) 관계자는 “이 염호 개발에만 참여하면 리튬이온전지 생산 에 필요한 리튬은 단번에 공급할 수 있다”며 흥분했다. 그는 볼리비아가 전략 광물로 지정한 리튬 개발 파트너 자리를 얻기 위해 계획안을 들고 부지런히 들락거렸다. 당시 오랫동안 광업을 다뤘던 터라 이 염호는 보도하지 않고 추이만 지켜봤다. 자원 개발사업의 공개는 그만큼 민감해서다. 한데 어느 날부터 우유니 염호에 대한 기사가 쏟아졌다. 정치권발이었다. 이 염호는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 자원외교의 상징적 치적으로 떠들썩했다. 그리고 지금은 멈췄다.

 이 무렵 자원 개발과 관련해 정치인과 관료들이 자기 치적인 양 홍보하는 광경을 보는 건 흔했다. 한 예로 볼리비아는 우리나라 광업 실무자들이 뚫은 새로운 자원 개발 루트였다. 세계의 광산들은 발레(Vale)·BHP빌리톤 등 세계 광물 메이저들이 지배하고 있는데, 볼리비아는 자원민족주의가 강해 이들 메이저가 손을 대기 어려운 나라였다. 한국은 이 시장을 개척해 볼리비아 국영광업회사인 코미볼과 코로코로 구리광산을 처음 합작 개발했다. 이 광산 계약서에 사인하기까지 1년여 동안 우여곡절이 많았다. 한데 이 계약 소식은 당시 고위 관료가 이 계약에 참석했다는 동정으로 둔갑해 정부에서 발표됐다.

 2000년대 세계시장의 큰 흐름 중 하나는 ‘자원전쟁’이다. 메이저, 자원민족주의 국가, 국가를 등에 업은 공기업 플레이어들이 엉켜 사생결단한다. 한국의 해외 자원 개발역사는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정부에 전담팀을 꾸려 뛰어든 건 노무현 정부였고, 이명박 정부 시절엔 정권 비즈니스로 급부상했다. 자원시장의 특징은 비밀이 많고, 장기적이고, 돈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한데 한국은 조급하고 시끄러웠다. 자원외교를 동네방네 소문내고, 정치인과 관료들은 밥숟가락 하나 얹으려고 달려들었고, 틈만 나면 생색을 냈다.

 조용히 진행해야 할 사업도 ‘일단 알리고 보자’였다. VIP도 문제지만 국회도 한몫했다고 실무자는 말했다. “국회가 문제다. 돈을 그렇게 줬는데, 뭘 하는지 알려 달라는 거다. 아직 비밀이라는 말은 안 통한다. 비밀유지협약이고, 공개 시 불이익이고 하는 말을 아무리 해 봐야 국회의원들한테는 하나도 안 먹힌다.”

 이렇게 혼란스러웠던 과거 자원외교는 지금 국정조사를 받는다. 정치적 의도와 사심으로 혼탁해진 자원 개발사업을 정리하고, 비리가 있었다면 밝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앞으로 사업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배제하고 자원 확보를 위한 바람직한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한때 VIP들 등쌀에 몸서리쳤던 실무자들조차 요즘 국조 돌아가는 형국에 미덥잖은 시선을 보낸다. 이제 몇 년 안 된 사업을 놓고 회수액을 논하고 40조원이나 투자했으니 혈세 낭비, 국부 유출이라며 몰아붙이는 국회의원들의 문제 제기부터 뭔가 포인트를 잘못 잡아 자원 개발에 대한 기본 상식을 의심케 한다는 거다. 자원 개발은 ‘돈·인내·배포’로 하는 거다. 혈세 낭비? 40조원으로 무상보육을 했다면 쓰고도 남았을 거다. 한데 돈은 생활비로만 다 쓰면 안 된다. 미래를 위한 투자도 해야 한다. 지금 같은 거친 문제 제기로 과연 비리만 쏙 뽑아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게다가 이 와중에 자원 개발의지는 꺾였고, 자원 개발이 멈췄다는 것도 걱정이다.

 자원 개발사업은 과거엔 개인적 영달과 욕망에 사로잡힌 정치인들 때문에 혼란을 겪었다. 한데 지금은 ‘그들이 틀렸다’는 걸 보여 주려는 냉소에 사로잡힌 정치인들에 의해 발목이 잡히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이래저래 정치인들은 걸림돌이라는 눈총을 받는다. 이번 국조에선 일과 비리를 분리하고, ‘무지(無知)한 열정 혹은 냉소’로 미래 자원 확보전략을 꺾지 말기 바란다.

양선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