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한줄도 못쓰느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김영삼전신민총재가 정치적 이유로 단식을 시작한 뒤 부터 그가 단식을 중단해 그 사실이 보도된 6월9일까지는 신문사, 특히·정치부기자에게는 곤혹스럽고 긴 23일간 이었다.
그의 단식이 미치는 영향의 파장으로 보아 어떤형태로 든 알려지긴 해야겠는데 정지활동파규제자의 정치적 행위라 보도에 한계가 따랐다.
이런 상황에서 나온 표현이 「정치관심사」「정치현안」「정국흐름」등 일반독자들에게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운 막연한 술어 들이었다.
자칫하면 엉뚱한 상상을 유발해 유언비어의 원인이 될 위험도 따랐다.
쓰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모두 미진하고 짜증나는 용어요, 표현법이었다.
자연히 독자들로 부터 문의와 항의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정국현안이라는게 도대체뭐요.』
『왜 신문이 그런 애매모호한 표현을 쓰시요.』
『김영삼씨가 단식을 한다는데 왜 신문에는 한줄 나지 않는거요.』
단순한 문의에서부터 항의·훈계·욕설에 이르는 전화를 하루에 백통정도 받고보면 지치다 못해 처량한 느낌마저 들기 마련이다.
더구나 야당쪽 취재담당이라 재야의 움직임까지를 취재해야하는 기자에게는 고충이 더했다.
정치부기자들과는 수년전부터 잘아는 처지인데도 재야 사람들은 취재기자들에게 차가운 시선을 보내다 못해 적대감을 표시해왔다.
『왜 한 줄도 쓰지않느냐』는 항의가 나중에는 『싣지도 않을 것을 취재는 뭣 때문에 하느냐』는 야유로 바뀌었다.
취재기자와 취재원간에 종종 언성이 높아지고 시비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 가운데서도 이 사건을 그야말로 마음껏 보도하던 외신들의 야유는 견디기 어려웠다.
외신들은 이 사건을 연일보도하면서 그 때마다 매번『한국의 언론들은 이 사건을 단 한줄도 보도하지 않고 있다』는 한마디를 빠뜨리지 않았다.
최근 야당의 한 당직자가 『민한딩은 지금 사면초가』라고 했다지만 재야쪽을 취재한 기자역시 사면초가였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는 바에야 언론과 야당이 정말 사면초가가 되어서야 되겠는가를 절실하게 생각해본 23일간이었다. <유 균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