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상하게 이기네 … 슈틸리케 '늪 축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4면

아시안컵 조별리그 1·2차전에서 8골을 몰아친 홈팀 호주도 ‘한국의 늪 축구’에 빠져 허우적거렸다. 호주는 17일 한국과 3차전에서 0-1로 졌다. 호주의 아지즈 베히치가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자 하늘을 보며 탄식을 내뱉고 있다. [브리즈번 AP=뉴시스]
슈틸리케

‘늪 축구.’ 지난 17일 아시안컵 조별리그 A조 3차전 한국-호주의 경기가 끝나자 이 단어가 인터넷 포털 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이 이끄는 한국의 축구 스타일을 빗댄 말이었다. 한국은 아시안컵 조별리그 3경기에서 딱 3골만 넣고, 3승을 챙겨, 조 1위로 8강에 진출했다. 오만과 쿠웨이트를 1-0으로 꺾은데 이어 우승후보 호주마저도 1-0으로 이겼다.

 한국축구를 ‘늪 축구’라고 정의한 팬은 “강팀이든 약팀이든 한국을 상대하면 늪에 빠진 듯 허우적거리다가 홀린 듯 패한다는 뜻에서 이런 이름을 붙였다”고 했다. 또 다른 축구팬은 늪 축구를 “억지로 선제골을 우겨 넣은 후, 상대팀이 삽질(헛발질)로 무의미한 시간이 경과하고, 경기 후반부 정신차린 상대 선수들이 결정적인 찬스를 맞지만, 골키퍼가 갑자기 노이어가 되는 축구”라고 정리했다. 호주전에서 선방쇼를 펼친 골키퍼 김진현(28·세레소 오사카)을 2014 브라질 월드컵 우승국 독일의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29)에 빗댄 것이다. 진흙을 뜻하는 ‘머드’에 스페인의 패스축구 ‘티키타카’ 를 합성한 ‘머드 타카’ 란 단어도 등장했다.

 한국의 늪 축구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일부에선 “승리는 했지만 내용은 낙제점”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쪽은 “결국 이기는 자가 강한 자”라고 말한다. 구자철(26·마인츠)은 호주전 후 “경기를 잘하는 팀이 강팀이 아니라, 이기는 팀이 강팀이다”고 말했다.

 사실 슈틸리케 감독은 ‘1-0 승리’보다는 ‘2-1 승리’를 더 좋아한다. 볼 점유율을 높이는 걸 원하고, 공격적인 축구를 선호한다. 하지만 이번 대회에서 이청용(27·볼턴·정강이뼈 실금)과 구자철(팔꿈치 인대 파열)이 부상으로 낙마했고, 손흥민(23·레버쿠젠) 등이 초반 감기 몸살로 고생했다. 차(車)와 포(包)를 잃어 늪 축구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슈틸리케 감독은 ‘계속 1-0으로 승리해 우승하는 것 아닌가’란 질문에 “한 번은 2-0으로 이겨야 할 텐데”라고 웃으면서 받아넘겼다.

 독일 대표팀과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에서 명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던 슈틸리케 감독은 ‘공격을 잘하는 팀은 경기에서 이기지만, 수비를 잘하는 팀은 우승을 차지한다’는 철학도 갖고 있다. 그는 지난해 12월 대한축구협회 기술 컨퍼런스에서 “공을 보유하고 있지 않아도 상대 선수와의 거리를 4m~4m83㎝로 유지해 압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단위까지 써 가며 수비를 강조했다.

 슈틸리케 감독의 이런 수비 철학은 호주전에서 빛을 발했다. 한국은 ▶유효슈팅(3-6) ▶경기 점유율(32.9%-67.1%) ▶패스 성공률(68.6%-87.7%) ▶패스 횟수(255회-514회)에서 모두 뒤졌다. 한국은 전반 32분 이정협(24·상주)이 선제골을 넣은 뒤 탄탄한 지역방어를 펼쳤다. 결국 1·2차전에서 8골을 몰아친 호주를 무실점으로 막았다.

 8강 토너먼트를 앞두고 늪 축구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한국은 약체를 상대로도 진땀승을 거뒀다. 우리 색깔과 안정감이 아직 부족하다”며 “강팀의 전제조건은 독일처럼 상대에 관계없이 90분간 준비한 축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은 조별리그 슈팅 성공률이 8.57%(총 슈팅 35개 중 3골)에 그쳤다. 8강에 오른 중국(17.85%), 호주(15.1%)보다 낮다.

 반면 한준희 KBS 해설위원은 “슈틸리케 감독이 팀을 맡은 지 4개월 밖에 안됐다. 수비와 공격 모두 미생(未生)”이라며 “슈틸리케 감독은 최선의 결과를 낼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을 택했다. 토너먼트에서도 실리축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한편 한국 대표팀은 19일 멜버른에서 휴식을 취하며 컨디션을 조절했다. 한국은 22일 오후 4시반(한국시간) 우즈베키스탄과 8강전에서 맞붙는다. 우즈벡의 미르잘랄 카시모프(45) 감독은 “브라질 월드컵 최종예선에서 한국에 졌다. 이번엔 이길 것이다”고 말했다.

 ◆아시안컵 22경기 연속 무승부 안 나와=C조 이란은 19일 아랍에미리트(UAE)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후반 추가시간 레자 구차네자드(28)의 결승골로 1-0으로 이겼다. 3전 전승을 기록한 이란은 UAE(2승1패)를 따돌리고 C조 1위로 8강에 진출, D조 2위와 4강행을 다툰다. 만약 한국이 8강에서 우즈베키스탄을 꺾고, 이란이 8강에서 D조 2위를 이기면, 한국과 이란은 4강에서 만난다. C조 바레인은 카타르를 2-1로 이겼다.

 호주 아시안컵은 19일 C조 2경기 포함 22경기 연속 무승부가 나오지 않으며 신기록을 재경신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은 19일 오전 “월드컵과 유로,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등 국제 축구대회를 통틀어 20경기 연속 무승부가 나오지 않은 건 85년 만에 처음”이라고 밝혔다. 1930년 우루과이 월드컵 당시 18경기 연속 무승부가 종전 기록이었다.

박린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