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에 뿌리둔「실천불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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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84년엔 우리나라에 큰 시운이 돌아온다.』
학승·도인·예언가로 명성을 떨친 불교조계종 탄허(김탄허) 스님이 지난1월 오대산 월정사조실방에서 말했던 예언이다.
탄허스님은 그 큰 시운을 스스로 맞이하지 못한 채 암으로 무아열반의 피안을 향해 입적했다.
38년 동안 아버지를「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스님」이라고 불러온 딸과『화엄경』47권의 국역 등 당대를 풍미한 빛나는 불교학문 활동을 세속에 남겨두고.
세속에 남겨놓은 빛나는 발자취가 스님이 가는 텅빈 자리에 다시한번 번뜩인다.
『한국은 세계불교의 총본산이 될 것이며 인류문화를 집대성할 것이 틀림없다.』
지난l월 눈속에 뒤덮인 월정사강당에 70여명의 스님과 신도들을 모아놓고 세수 76세의 노익장으로 정열적인 불교교리를 강의하던 노장의 자신감 넘친 사자후였다.
면암 최익현계열의 기호학파 막내동이로 한학에 달통했던 그가 부인과 딸을 남겨두고 어느날 홀연히 오대산 방모암스님을 찾아나섰던 것은 28세 때.
딸은 15세되던해 어머니가 손에 쥐어준 자비와 주소를 가지고 아버지를 찾아갔다가 그대로 입산 비구니가 됐다.
얼마후 고향집을 찾아 마당에 들어선 비구니 딸을 본 어머니는『어디서 오신 스님이냐』면서 혹 탄허스님을 아느냐고 물었다.
출가이전의 세속사리였던 스님의 딸은 수도정진 중 바로 스님의 수좌와 인연을 맺어 결혼, 환속함으로써 불가에서의 부녀상봉에 막을 내렸다.
『불적은 있어도 불교는 없었다.』
지난 년 2개월 동안 인도의 불교 성지를 둘러보고 온 탄허스님의 말이었다.
스님은 인생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5년 동안 2백자 원고지 10만장을 써내는 학구의 정열을 멈추지 않았다.
81년6월 불교강원의 기본교재인『사미사교집』을 국역해냈을 때의 일이다.
당대 불교교학의 금자탑인『화엄경』47권을 완역한 다음의 역저였던『사미사교집』을 한글로 번역하기까지는 여행을 할 때도 원전과 씨름했다.
『지식과 지혜는 다른 것이다. 얼마나 아느냐보다 어떻게 발심하느냐가 문제다.』
불가 유가의 선지식들을 두루 닦은 탄허스님이 늘「머리와 입의 불교」보다는「실천불교」를 강조해온 지론이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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