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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3500원 담배, 한 달 만에 값 올리는 '꼼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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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

3500원짜리 외산 담배 ‘보그’가 ‘귀하신 몸’이 됐다. 담뱃세 인상 이후 국산 주요 담배보다 1000원이나 싼 가격에 제품을 내놓으면서 담뱃값을 아끼려는 애연가들의 주문이 몰린 탓이다. 담배계의 ‘허니버터칩’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일각에선 품귀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하지만 애연가들의 ‘환호’도 이달까지다. 제조사인 BAT코리아에서 다음 달부터 가격을 4000원대로 올리기 때문이다. BAT 관계자는 “현재 3500원에 파는 물량은 담뱃세가 오르기 전인 지난해 생산한 재고”라며 “재고가 떨어지는 다음 달에는 제품을 리뉴얼해 4000원대에 판매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BAT 입장에선 일시적인 저가 전략을 통해 쌓인 재고를 제값 받고 털어내면서, 브랜드도 알리는 1석2조의 효과를 봤다.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격을 변경하는 것을 두고 뭐랄 수 없다. 하지만 애연가들이 분통을 터뜨리는 이유는 일종의 한정 수량 제품을 미끼 삼아 소비자들의 뒤통수를 쳤다는 기분이 들어서다.

 사실 3500원의 가격은 담배 한 갑에 붙는 세금이 3318원인 현 담배 유통 구조상 유지할 수 없는 가격이다. 소매점주에게 돌아갈 마진까지 감안하면 사실상 손해를 보고 파는 가격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가이 멜드럼 BAT코리아 사장은 지난주 “한국에서 수퍼슬림 제품에 대한 선호가 높아지고 있다. 보그 시리즈를 부담 없는 가격에 즐길 수 있도록 가격을 정했다”고 말했다. 마치 소비자를 위해 가격을 낮게 책정한 것처럼 밝히더니, 얼마 되지 않아 가격을 올려 소비자의 혼란을 부추긴 셈이다.

 담뱃값을 한꺼번에 많이 올려 금연 효과를 내겠다는 정부의 정책에도 타격을 줬다. 기존보다 1000원 정도 오른 인상 폭은 담뱃값 인상에 대한 체감도를 많이 떨어뜨린다. “BAT의 저가 전략은 새해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을 반감시켰다. 당초 기대했던 금연 효과가 떨어질 것”(한국금연운동협의회 서홍관 회장)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결국 국가정책에 반하는 가격 전략으로 국민 건강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얘기다.

 BAT는 단기에 최대의 마케팅 효과를 누렸다고 자찬할 것이다. 하지만 시장 점유율 경쟁에 매몰돼 소비자 신뢰를 깎아먹는 마케팅을 펼치는 건 세계적인 기업의 위신에 걸맞은 행태가 아니다. 오히려 얄팍한 상술로 애연가들의 배신감만 더 커질 뿐이다.

 BAT는 과거 한때 국내 담배시장에서 외산 담배 1위를 달렸다. 그러나 2011년 담배 가격을 기습적으로 200원씩 올린 이후 필립모리스에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BAT에는 악몽 같은 2011년 국내 담배 시장이 오버랩되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국내 소비자들은 그리 녹록하지 않다.

손해용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