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불법 도청 배후 밝힐 증거 잡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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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서울중앙지검 도청수사팀이 김은성 전 국정원 국내담당 차장을 전격 체포한 것이 신호탄이다. 검찰은 김씨를 구속한 뒤 DJ 정부에서 국정원장을 지낸 인사들을 차례로 불러 조사할 방침이다. 특히 전직 국정원장들 가운데 불법 도청에 개입한 정도가 심한 한두 명은 사법처리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예상된다.

◆ 드러나는 배후=김씨는 도청 수사가 시작된 7월 말 이후 사법처리되는 첫 국정원 고위 간부다. 김씨의 체포영장에 적시된 죄목은 불법 감청을 지시한 부분에 대한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이다. 검찰은 체포 이유를 "장기간 불법 감청에 관여했고 지시에 해당하는 독려를 했다"고 밝혔다. 그를 불법 도청의 주도자로 파악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자신감은 과학보안국 직원 등 실무진의 불법 도.감청 배후에 국정원 고위층이 있다는 증거를 확보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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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국정원 전.현직 직원들로부터 도청 과정과 도청을 지시하고 보고받은 윗선과 관련된 진술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의 경우 정치인 등 구체적인 도청 대상까지 부하직원들에게 지시했다는 관련자 진술이 나왔다고 한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압수수색 과정에서 유선중계 통신망 감청장비(R-2)와 이동식 휴대전화 감청장비(CAS)가 사용된 목록 등을 입수한 것도 배후 수사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김씨는 국내담당 차장을 맡기 전에는 국정원 핵심 라인인 대공정책실장을 지냈다. 이는 실제 불법 도청은 김씨가 차장을 맡기 전부터 시작됐을 개연성을 높여준다.

김씨가 2차장을 그만둔 지 4개월 만에 감청장비 전량이 폐기된 데는 김씨 주도의 불법 감청이 당시 국정원 내부에서도 논란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광범위한 도청이 자행됐다는 것이다.

◆ 전직 국정원장으로 향하는 칼날=김씨 처리 이후 검찰 수사는 이종찬.천용택.임동원.신건씨 등 전직 국정원장들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검찰은 특히 이들 중 일부에 대해서는 불법 도청 개입 정도를 조사한 뒤 사법처리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김씨가 2차장 재직 때인 2000년 4월~2001년 11월 사이에 부하직원들이 가져온 도청 정보를 당시 국정원장이던 임동원.신건씨 등은 물론이고 정치권 실세들에게 보고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집중 추궁 중이다.

김씨는 재직 중 '국정원 2인자'로 통하며 폭넓게 인맥을 관리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김씨가 도청 테이프와 녹취록 등을 관리하며 필요한 사람들에게 유출했을 가능성도 있어 수사 결과에 따라 상당한 후폭풍이 예상된다.

김씨에게 도청 내용을 전해들은 사람들도 공소시효(5년)가 남아 있어 통신비밀보호법 위반으로 처벌될 수 있다.

한편 검찰은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2002년 폭로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휴대전화 및 전화 대화 내용은 대부분 국정원이 도청한 자료임을 확인했다. 검찰은 도청 자료가 유출된 경위를 추적 중이다.

조강수 기자

진승현 게이트 구명로비
징역1년 복역 중 가석방

◆ 김은성씨는=DJ정부 때 국정원 내 호남 인맥의 대표주자였던 김씨는 여러 가지 대형 사건에 개입했다. 2001년 12월 '진승현 게이트'수사 때는 진씨에게서 5000만원을 받고 진씨에 대한 구명 로비를 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돼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가석방됐다.

또 '최규선 게이트' 수사 과정에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 측에 정기적으로 정국 상황 등에 대해 정보보고를 한 것으로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1971년 중앙정보부에 공채로 입사, 30년 넘게 국정원에 근무한 그는 한직을 돌다 DJ정부 들어 대공정책실장에 발탁됐고, 2000년 4월 고 엄익준 전 차장의 뒤를 이어 국정원 국내담당 2차장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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