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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섭의 시대공감] ‘샌드위치론’의 함정에 빠지지 말자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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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0호 31면

과거 ‘샌드위치론’으로 종종 등장하던 말이 요즈음에는 ‘넛크래커(nutcracker) 현상’이라는 섬뜩한 말로 많이 나온다. 두 가지 다 한국경제가 선진국과 후발국의 중간에 끼어서 어려움을 겪을 거라는 얘기이지만 넛크래커 현상은 호두 까는 기구에 끼어서 완전히 부서진다는 끔찍한 비관론을 담고 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내 머리가 넛크래커에 끼어 있는 상황이 연상(聯想)되곤 한다.

이런 말들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나? 국내에 넛크래커라는 말을 처음 도입한 부즈앨런 보고서의 내용을 먼저 보자. 1997년 한국 금융위기가 오기 직전 이 보고서는 한국의 4대 산업인 반도체·철강·자동차·가전이 넛크래커에 끼어 있어 수입이 개방되면 대부분 부실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했다. 한국은 비록 금융위기를 겪었지만 4대 산업이 2000년대에 완전 개방된 환경에서 한국경제의 성장을 계속 이끌었다.

그 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007년 그룹이 한창 잘나가고 있을 때에 “앞으로의 20년이 걱정된다”며 샌드위치론을 내놓아 파장을 일으켰다. 삼성은 항상 조직에 위기의식을 불어넣으면서 다음 단계 도약을 일궈내곤 했다. 실제로 삼성그룹은 이 회장의 발언 이후에도 성장세를 지속했고 삼성전자는 세계 최대 전자회사라는 위치를 공고히 했다.

지금 샌드위치론이 많이 제기되는 것은 한국이 저성장에 빠져 있는 가운데 중국 기업들의 추격이 빨라지고 있어서인 것 같다. 그러나 일단 현재의 저성장은 샌드위치론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내수이기 때문이다. 수출은 그럭저럭 돌아가고 있다. 수출 경쟁력에 큰 문제가 생겼다고 볼 근거는 별로 없다.

수출기업들에도 최근 어려움이 많아지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도 경쟁력보다 세계시장의 수요 부진이 더 큰 원인인 것 같다. 세계경제가 저성장으로 신음하고 있는데, 특히 최근 한국수출 증가의 견인차였던 신흥시장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의 수출기업들이라고 이를 피해갈 수 없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이 크게 둔화한 것에 대해 제기되는 우려도 마찬가지다. 여러 언론이나 보고서는 이를 한국기업들의 경쟁력이 떨어진 증거로 받아들이고 경고의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이것은 중국이 세계의 생산공장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한국이 중국에 수출하는 많은 제품이 중국이 가공해서 수출하기 위한 중간재다. 중국의 수출이 둔화하면 중간재 수입도 둔화할 수밖에 없고 한국의 대중국 수출도 둔화한다. 대중국 수출 둔화를 한국의 경쟁력 약화로만 몰아붙이며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샌드위치론이 안고 있는 가장 큰 맹점은 국가 간 무역에 마치 경쟁관계만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무역에는 보완관계도 크다. 이웃 나라가 잘되면 경쟁자들도 나타나지만 그 나라에 내 제품과 서비스를 팔 수 있는 시장도 커진다.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이런 보완관계는 더 빨리 커지고 있다. 이 보완관계가 최근 들어 한국의 무역에서 갑자기 줄어들었다고 볼 만한 근거는 거의 없다.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샌드위치론은 별로 설득력이 없다. 한국이 고도성장을 지속할 때 일본은 미국과 한국 사이에 끼어 있었다. 한국의 성장 때문에 일본에서 샌드위치론이 부각됐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다. 90년대 이후 일본의 불황이 한국의 경제기적이나 미국경제의 부활에 끼어서 벌어진 것이라고 말하기도 힘들다. 유럽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국·프랑스 등 유럽의 대국(大國)들이 성장할 때에 덴마크·스위스 등 소국(小國)들의 경제가 위축됐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소국들은 대국들보다 더 높은 1인당 국민소득을 달성했다. 대국들이 제공해주는 보완관계를 슬기롭게 활용한 결과다.

경쟁관계만 놓고 보더라도 샌드위치론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이 경쟁은 세계시장에 참여하는 한 누구나 당면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 200개 가량에 달하는 나라들 중에서 일등과 꼴찌를 빼놓고는 다 샌드위치 신세다. 한국만 샌드위치 상태라고 어떻게 감히 얘기할 수 있는가? 샌드위치론은 아무리 좋게 해석해도 경쟁에 뒤지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일반적 경고를 달리 표현한 것일 뿐이다.

어느 나라건 수많은 발달단계의 층에서 각자의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위치에 따르는 도전은 항상 있다. 경쟁관계만 생각하면 전체 상황의 일부만 쳐다보며 비관적으로 흐르기 쉽다. 그러나 여기에는 보완관계라는 기회가 항상 함께 있다. 보완관계 쪽으로 눈을 돌릴 때 더 큰 시장을 찾을 수 있고 보다 낙관적이 될 수 있다. 샌드위치에 내용물이 많아지고 여러 층이 될수록 샌드위치는 더 맛있어지는 것이다.

신장섭 싱가포르 국립대학교 경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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