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매치기도 "직접증거"를 대라 잇따른 무죄판결「쇼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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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법원이 소매치기 피고인에 대해서도 엄격한 직접증거를 요구하고 나섰다. 법원은 그동안 소매치기가 간통죄와 마찬가지로 은밀하게 이뤄지는 범행이어서 직접증거를 좀처럼 잡기힘들다는 특수성을 고려해 다른 범죄와 달리 전과사실 정황등 간접증거만으로 유죄판결을 해왔다.
그러나 법원이 최근들어 이같은 재판경향을 크게 바꿔 직접증거 없는 소매치기피고인에게 잇달아 무죄를 선고하는 등 엄격한 증거를 요구해 주목되고 있다. 이같은 사법부의 판결 경향에 대해 재야법조계에서는 인권옹호를 위한 바람직한 자세라며 환영하고 있으나 검찰등 수사기관에서는 소매치기사건에 직접 증거를 요구한다면 범인의 대다수를 놓칠 우려가 있으며 피고인의 인권 못지 않게 피해자의 인격도 존중되어야한다는 엇갈린 반응을 나타내고있다.
서울고법 제1형사부(재판장 이영노부장판사) 는 18이상 절도등 전과 10범 최모피고인(52)에 대한 특정범죄 가중처벌법위반(상습절도) 사건 항소심에서『범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원심대로 무죄를 선고했다.
최피고인은 지난해 8월 충북 충주시 역전동 약속식육점 앞길에서 가정주부 전모씨 (49) 의 시장바구니에 손을 넣어 현금 7천원이 든 손지갑을 꺼내려했다는 혐의로 구속기소 됐었다.
최피고인은 현장을 목격한 경찰관에 의해 현장에서 검거됐으나 최피고인이 법정에서 범행을 부인하자 재판부가 무죄를 선고한 것.
대법원 형사1부 (주심 이성렬대법원판사) 는 10일 절도전과7범 김모피고인(35)에 대한 특정범죄가중처벌법위반(상습절도)사건 상고심에서『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징역3년에 보호감호 7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광주고법으로 되돌려 보냈다.
김피고인은 지난해 8월 전남 강진군 강진읍 동성리 생선가게에서 이모씨(33·여·강진군 도암면)의 치마주머니에 있던 현금 2만1천5백원을 소매치기한 혐의로 구속기소돼 1, 2심에서 모두 유죄를 선고 받았던 것.
1, 2심에서는 범행당시범인의 팔목에 흉터가 있었다는 목격자들의 진술을 토대로 팔목의 흉터를 김피고인의 유죄증거로 삼았으나 대법원은『비록 팔목에 비슷한 훙터가 있다하더라도 이러한 목적자의 진술만으로는 유죄의 증거로 삼을 수 없다』고 파기이유를 밝혔다.
또 서울고법 제3형사부(재판장 이한구부장판사)는 절도전과 3범 최모피고인(28)에 대한 특가법위반(상습절도)사건 재항소심에서 징역2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고했다.
최피고인은 81년10월 시내버스 안에서 승객 황모씨(57) 의 바지뒷 주머니에 든 현금 2만9천원을 소매치기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1, 2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았으나 대법원이『피해자 황씨 주변에 여자들만 있었고 남자는 최피고인만 바짝 붙어 있었다는 사실은 간접전인 정황에 불과할 뿐 직접적인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파기했었다.
대법원은 이밖에 지난해 11월에도 절도전과6범 박모피고인(32·서울 아현동)의 소매치기 사건에서 도 같은 이유로 검사의 상고를 기각, 원심대로 무죄를 확정했다.
박피고인은 81년9월 서울역 매표구 앞에서 30대 여자의 핸드백을 뒤져 6천원을 소매치기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2년에 보호감호 10년을 선고받았으나 2심이 공소사실을 인정할만한 직접증거가 없다고 무죄를 선고했던 것.
소매치기 사건에 대한 잇단 무죄판결에 대해 안명기변호사근『소매치기 사건이라고 해서 증거재판이라는 형사재판의 대원칙에서 예의일수는 없다』며 법원의 엄격한 증거요구는 피고인의 이권보호라는 측면에서 당연하고 바람직한 것이라고 환영했다.
그러나 서울지검의 한 간부는 소매치기사건이 직접증거를 요구한다면 범인의 80∼90%는 훔치게 된다고 우려하고 조직소매치기의 경우 직접 증거를 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는 또 증거를 잡지 못해 이들이 범행을 일삼는다면 결국 선량한 시민들의 피해만 늘게 된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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