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일의 인사이드피치] 216. 믿음과 기다림의 '멍석 리더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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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 리더십'이 상한가다. 그가 이끄는 한화는 시즌 전 약팀으로 분류됐다. 그러나 보기 좋게 예상을 깼다. 그 과정에서 '한물 갔다'고 여겼던 선수들이 분발했다. 타선에선 초반 김인철이 돌풍을 일으켰다. 기억에도 가물거렸던 만 서른여섯의 지연규는 대뜸 마무리투수로 다시 태어났다. 에이스 문동환은 6년 만에 10승 투수로 돌아왔다. 시즌 후반 조성민이 승리투수가 됐을 때, 그 바람은 절정이었다.

그 '김인식 리더십'이 준플레이오프에서 또 한번 요동친다. 이번에는 3차전 승리투수 최영필이다. 200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동안 1승(6패)밖에 올리지 못했던 그다. 준플레이오프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3차전에 등판, 7이닝을 넘게 던지면서 승리투수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경기가 끝난 뒤 누가 물었다. "올해 뭐가 달라졌기에 정규시즌(8승)에서도, 포스트시즌에서도 갑자기 잘하는 겁니까."

최영필은 잠시 뜸을 들였다.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표현해도 되는지 망설이는 것 같았다. 그러더니 무겁게 입을 열었다. "사실 전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지금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늘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고, 자리가 없었습니다. 올해 달라졌다면 그 부분입니다. 올해는 자리가 있고, 기회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멍석'의 리더십은 바로 이 부분이다. "야구는 선수들이 한다"는 말은 야구계의 금언(金言)이다. 감독이 아무리 뛰어나고, 수읽기가 탁월해도 직접 야구를 할 수는 없다. 그래서 감독의 가장 큰 역할은 선수들이 마음껏 기량을 펼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 주는 것이다. 제대로 된 멍석을, 제대로 된 선수에게 깔아주는 게 바람직한 리더십이다. 그래야 창의력이 생긴다. 이 부분은 2002 월드컵 때 히딩크가 강조했던 점이기도 하다.

'멍석의 리더십'은 구단경영에서도 통한다. 2002년 삼성의 유일한 한국시리즈 우승 때 신필렬 사장은 김응룡 감독과 코칭스태프에게 적절한 멍석을 깔았다. 그가 삼성병원장으로 일하면서 얻은 노하우. '전문가에게 작은 일까지 주문하지 말라'였다. 자리만 만들어주고 주문은 삼갔다. 그리고 성공했다.

한화의 리더 송진우는 이렇게 말한다. "앞장서서 자신을 따라오라고 주문하는 감독님들이 계셨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님은 뒤에서 지켜보면서 앞으로 가라고 밀어준다."

김인식 리더십은 멍석을 깔아주고 지켜보는, 믿음과 기다림의 리더십이다.

이태일 야구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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