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면장은 친일 안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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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청원군 현도면 사무소 앞에 다시 세워진 오 전 면장의 기념비(오른쪽)과 1946년의 옛 기념비. 아래 사진은 오영겸 전면장.

친일인사 선정 논란이 있는 가운데 일제강점 말기 재임한 한 면장의 기념비가 주민들에 의해 세워져 눈길을 끈다.

충북 청원군 현도면 이장단협의회(회장 이용한)는 최근 면사무소 입구에 160cm 크기의 '전(前)면장 오영겸(1889~1954) 기념비'를 세웠다. 이 회장은 "54년 설립한 옛 기념비가 초라한 데다 공적 내용이 제대로 기록돼 있지 않아 주민들이 200만원을 모아 다시 만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면장들은 일제의 공출(전쟁 물자 수집 ).징용 강요의 '대리인' 역할을 맡아 면민들 원성을 사던 때였기에 이채롭다.

비문에는 오 전 면장에 대해 "광복후 극도로 고조된 혐일(嫌日)감정으로 공직에 있었던 자라면 모두를 친일이나 반역이니 하여 가혹한 책벌이 가해지던 시절 도리혀 칭송을 받아 면장으로 재추대 받았다"고 적고 있다.

오희관(81.현도면 양지리)씨는 "그는 공출을 줄이려 노력했고 징용도 덜 보내려 노력했던 분"이라며 "그 덕에 우리 면에선 정신대에 한명도 끌려가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오 전 면장은 34년부터 11년간 면장으로 일했다. 해방 후 면장직을 내놓았으나 주위서 다시 맡아달라고 해 그 해 12월까지 현직에 있었다.

60년대 이곳 면장을 지낸 유영선(85)씨는 "주민을 혹독하게 대했던 직원 몇몇은 주민들을 피해 도망다녔지만 오 면장을 욕하는 사람은 전혀 없었다"며 "아마 일제 말기 공직자로 공적비가 세워진 사람은 그가 유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국대나 징용.징병(당시 징병은 경찰이 관장)에 끌려간 사람들 집에 찾아가 위로하며 도울 일이 없는가 묻고 다녔다고 한다. 유씨는 "그가 면장을 그만둔 후 '부부가 농사지으며 사니 정말 행복하다'고 여러번 말했다"며 "면장 시절 마음 고생을 많이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고 했다. 오 전 면장이 여러차례 면장을 그만두려 했을때 주민들이 "당신이 아닌 다른 사람이 면장하면 우리가 더 고생하니 계속하라"며 말렸다고 한다.

첫 기념비는 당초 면장을 그만 둔 다음해인 46년 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졌으나, 그가 극력 만류해 땅에 묻어다 사망 후 세운 것이다.

유씨는 "50년간 첫 기념비가 아무런 불미스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을 보면 주민들 대부분이 그의 공적에 공감했다는 증거가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조한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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