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소세 감면 축소에 불만 목소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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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사기진작은 사라지고 공평과세만 남았다'. 요즘 과학기술계에 불어닥친 화두다. 지난 1일 재정경제부가 새 소득세법 시행령을 고시하면서부터다.

지금까지 사립대학을 포함한 모든 대학의 교수와 정부출연기관 연구원들은 연봉의 20% 정도에 해당하는 연구활동비에 대해 비과세 혜택을 받아왔는데, 재경부가 "대학교수와 연구원이 비교적 고소득자인 만큼 저소득 근로자와 형평에 어긋난다"며 이같은 비과세 혜택을 2007년까지 단계적으로 없애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당장 내년부터 비과세 혜택 비율이 5% 깎인 15%로 시행된다.

완전 폐지되는 2007년이면 어느 정도의 세금을 추가 부담하는지 대덕연구단지의 연구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했다.

연구활동비.차량보조비.중식보조비 등을 모두 포함한 실제 급여성 금액을 따져본 결과, 박사학위를 받고 연구원에 들어와 14년이 지난 A씨(44)는 연봉 5천4백만원으로 연간 약 2백20만원이 추가 부담된다. 연봉 3천8백만원인 10년차 B씨(36)는 매년 1백50만원 이상의 세금을 더 내야 한다.

'과학기술입국'을 주장해온 참여정부 출범 이후 잔뜩 기대에 부푼 과학기술계로서는 뒤통수를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다. 이공계 기피현상이 눈에 띄게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사기진작책이 아닌 또 다른 기피원인이 제공된 탓에 허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더욱이 비과세 혜택을 민간기업 연구원으로 확대 실시하겠다는 것이 노무현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사항이었는데 한순간에 '공약(空約)'으로 전락하면서 정부정책을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다.

재경부 소득세제과 관계자는 "각종 연구개발비 등을 늘려 지원하고 있는 만큼 이공계 기피와는 별개의 문제"라며 "비과세 혜택을 민간기업 연구원까지 확대 실시한다는 방침에 대해서는 재경부가 계속 반대 입장을 유지해왔다"고 밝혔다. 다음달 발표되는 최종 공약사항에는 포함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여기저기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고조되고 있다. 이성우 전국과기노조 위원장은 "조세 형평의 생색내기용으로 연구원을 희생양으로 삼겠다는 속셈이라면 전 연구원이 나서서 가만 있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부터 이틀간 치러진 대의원 워크숍에서도 이 문제가 심각하게 논의됐다.

고소득자로 분류되는 점도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이다. 박사학위를 받기 위해서는 일반 대졸자보다 5년 이상 사회 진입이 늦고 연구성과가 없을 경우 정년은 물론 있던 자리마저 위태로워진다는 점을 감안하면 절대 고소득층이 아니라고 과학기술계는 입을 모았다.

출연연 연구발전협의회 이규호(화학연 책임연구원) 회장은 "국민의 정부 시절 대학생 자녀 학자금 지원을 없애면서 실질 급여가 상당부분 줄었다"며 "이번 시행령으로 급여가 재차 삭감될 경우 연구원들의 연구 개발 의욕이 급속히 가라앉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당 부처인 과학기술부 또한 난감한 표정이다. 재경부의 시행령 고시가 사전 조율없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문유현 과학기술정책실장은 "과학기술인력에 대한 푸대접은 장기적으로 국가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어 정부의 새로운 의지를 반드시 보여줄 때"라며 "공평과세 이외에 보수체계 개선 등 과학기술인의 사기를 끌어올릴 만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대덕연구단지에서 만난 한 연구원은 정부정책을 다음과 같이 꼬집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명예의 전당을 지어주고 특정상금을 3억원으로 올려주는 것이 아니다. 그저 안정된 임금과 사회적 지위에서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주면 좋겠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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