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제 갈길을 잃고 있다|가톨릭 『사목』지, 젊은 신부들 대담 실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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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오늘의 한국교회는 예수그리스도의 길과는 전혀 다른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껏 개인차원의 자선으로 여겨 죄책감을 많이 심어주고 그중 조금을 덜어주는 식의 이웃사랑 정도로 가르친다는 인상이 짙다.』
가톨릭 「사목」지가 최근 젊은 신부들의 대담을 통해 오늘의 교회풍토를 비판한 내용중의 한 토막이다.
이 대담에서 정호경 신부(가톨릭농민회전국지도신부)는 『교회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예수에게로 가까이 가야한다』고 강조하면서 민중사목을 「용공」으로 모는 기독인들이야말로 사이비 종교인이라고 호되게 비판했다.
오늘의 교회는 강론·고백성사·교리시간·설교 등의 교회모임 대부분이 자기혼자 책임을 질 것이 아닌 개인의 죄에까지도 잔인하게 단죄하는 반면 세상의 구조악에 대해서는 별 이야기가 없다는 것이다.
또 많은 경우 구조악 이야기가 나와도 사랑이니, 대화니 해서 얼버무리고 남의 이야기처럼 취급해버린다는 것이다.
정신부는『기독교 지도자들은 대개의 경우 사회적 기득권안보에 교회안보까지 하기 위한 이중장벽을 쌓고 교회 안에서는 하느님·예수님의 배경을 내세움으로써 스스로의 문제를 느끼기조차 못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는 예수가 시대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현장에 뛰어든 분임을 새삼 인식, 치닫고 있는 교회대형화 등을 지양하고 현장공동체화 해야한다고 역설했다.
또 정양모신부(서강대교수)는 『삶의 기준을 예수에게 두고 사는 사람들의 체험이 모이면 교회경신은 따라서 오는 것』이라고 전제하고 체험과 현장을 멀리한 채 책상 위에서 서양사람들이 한말들을 나름대로 꿰어 맞추는 정도의 한국신학은 하루 속히 지양돼야한다고 했다.
세상이 변했는데 중세골방으로 뒷걸음쳐있는 개토식의 신학교육 역시 비싼 돈 들여 그런 짓 하는게 사치스러울 뿐이라는 것이다.
오늘의 사제교육은 근로자·농민문제 등에 대해 현장의 삶을 간접적으로라도 만나게 해주는게 좋다는 것.
김영신신부(가톨릭노동청년회지도신부)는 『과연 오늘의 한국교회는 인간회복을 위해 예수님을 따라나설 마음이라도 있는가』고 반문했다.
그는 교회가 외적 확장, 자체안보에 연연한 채 현실을 외면하거나 영합하는 것을 볼 때마다 교회지도자보다는 오히려 학생·농민·근로자들이 더 예수님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아직도 근로자 신자들은 도시본당의 회합실을 얻거나 신부를 만나기가 어려운 채 부유한 곳에 안주해 있는 게 한국교회의 현주소라는 것.
김신부는 한국교회의 신앙은 이제 혼자 열심히 기도해 천당가기를 바라는 「정적신앙」에서 이웃을 보고 만나고 함께 하는 「동적 신앙」으로의 탈바꿈을 제창하면서 예수처럼 이 시대의 죄를 짊어지고 살아가는 기독인이 많이 나와야 교회의 희망이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이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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