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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주의가 놓은다리-한·중공 여객기 송환협상 타결의 뜻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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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납치된 중공여객기와 승객의 인도를 위한 지난 이틀간의 한·중공간 교섭은 합의문서작성이라는 막바지단계에서 주춤거려 9일 하루를 공로하고 10일에 들어 타결을 보았다. 합의문서 작성을 위한 실무회담에서 양측은 △국호의 표기 및 대표단자격문제 △문서형식 △납치범 처리 등에 이견을 드러냈다. 특히 양측대표들은 공식 호칭문제를 둘러싸고 근본적인 의견의 차이를 보여 9일 하루 내내 이 문제를 놓고 씨름을 벌였다.
당초 조기송환이라는 기본원칙에 쉽게 합의했던 양측이 합의문서작성을 둘러싼 형식요건에서 이처럼 난항한 것은 이 문제가 형식요건이면서도 한·중공간 교섭을 성립시키는 본질문제란 중대한 의미를 지녔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양측의 주장을 옮기면 중공측은 합의문서에 우리의 공식국호를 쓰기 어렵다는 것이고, 우리측은 양측의 국가 명이 반드시 담겨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공측은 한국과 중공간에 외교관계가 없다는 점을 들어 국가와 국가간의 교섭이 아닌 개인과 개인의 교섭을 내세웠다. 말하자면 중공측 수석대표인 심도와 우리측 수석대표인 「공노명」의 개인자격으로 이번 사건처리를 매듭짓자는 주장이었다. 이러한 중공의 주장은 그들이 당초 대표단 파한을 제의하면서 스스로 「대한민국」이라는 호칭을 사용, 전향적 자세를 보였던 입장에서 도로 원점으로 후퇴한 것이다.
이러한 중공측 태도에 대해 우리측은 처음부터 국제간의 문서에서 우리 국호를 사용하지 않는 선례를 우리 스스로가 인정하고 들어간다는 것은 한마디로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이번 사건의 발단파 궁극적인 수용책임이 전적으로 중공측에 있다는 점을 감안할때 중공의 그러한 소극적 태도는 교섭의 기본 틀과 자세에 문제가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만일의 경우 우리정부가 중공의 한 개인을 상대하지 않고 임의로운 결정을 취한다 해도 그 원인과 책임 역시 중공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우리측의 의지도 제시되었다.
중공측은 양국의 공식국호가 표기된 공식합의문서에 서명할 경우 이것이사실상의 한국 승인이라는 결과로 해석될 것을 우려한 것으로 보여진다.
이러한 중공의 우려는 단순히 북한을 의식한 것이 사실이며 지금은 여객기 납치사건이라는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끌때지 그 이상의 의미 부여나 관계의 확대해석은 곤란하다는 중공정부의 판단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러한 중공측의판단은 그러나 실질적으로 엄존해 있는 두개의 국가가문서를 교환하는 마당에 「존재」자체를 외면해야하는 무리와 억지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딜레머에 봉착했고 이같은 분위기는 9일 온종일을 소비한 실무교섭에서 나타난 중공측의 기이한 교섭자세에서 어느 정도 그 고충이 읽어진다.
▲심도 수석대표=공 선생과 내가 서명하는 것으로 일단락 지읍시다.
▲공노명 수석대표=그것은 안됩니다.
▲심=그렇다면 공 외무부 제1차관보 대 심 민항 총 국장으로 합시다.
▲공 수석=어느 나라의 외무부차관보고 어느 나라 민항 총 국장입니까.
▲심=우리는 귀국의 성의와 진심어린 대응에 큰 후의를 느낍니다.
▲공=다른 것은 어떻게 표현해도 좋습니다. 다만 서명만은 대한민국외무부 제l차관보인 나와 중화인민공화국 민항 총 국장인 심도 선생이 하는 것으로 합시다.
▲심=……….
이상과 갈은 단순하고 간단한 제의와 응답이 8일방 자정부터 10일 새벽1시30분까지 모두 6시간 6차례에 걸친 실무교섭에서 되풀이 됐다.
우리측의 마지노선인 문안말미에만 국호를 표기한다는 이 제안은 결국 중공측의 심야본국협의를 거쳐 실무적으로 타결됐고 상오10시 마지막 전체회담에서 채택됐다. 본문의 국호표시는 「양측」(Both side)으로만 표기하고 서명자 이름 앞에 「대한민국」(the Repu-blic of Korea)과 「중화인민공화국」(the Peoples Republic of China)으로 정식 국호를 사용하기로 한 것이다.
중공측이 권리유보를 계속 고집한 인질범 처리문제는 처리에 관한 명문규정을 합의문서에서 아에 언급치 않는 것으로 절충했다.
사실 국가의 공식대표 자격이 아니고 민항 총 국장이라고만 내세우면 우리의 통지권에 속하는 납치범 처리문제에 대해 어떤 공식적 견해를 밝힐 입장도 못된다고 할 수 있다.
양국은 「앞으로 이와 같은 유사한 성격의 사건이 일어날 경우 서로 협조한다」는 문안을 우리측 제외로 삽입, 대회의 정신을 살려나가기로 한 것은 음미 할만한 대목이다.
그러나 그 유사한 사건의 경우 어디가 자구가 돼 어떠한 방식으로 협조를 하느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이 아니라 우선 원칙표명이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교섭에 시종 관여했던 우리측의 한 당국자는 이틀간에 걸쳐 상호 같은 주장과 입장이 반복되었지만 『기이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정중하면서 확고했다』고 전했다.
『아마도 외교교섭사상 가장 진기한 교섭이었을 것』이라며 『중공측은 회담과정에서 「분국정부의 후의에 감사한다」는 말을 골백번도 더 되었을 것』이라고 이 당국자는 전했다.
또 기본자세의 흔들림 없이, 그렇다고 해서 이런 경우 흔히 있을 수 있는 고성이나 책상두드리기식의 외교 논전없이 교섭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이번 교섭이 어떤 이해득실을 가리고 얻어내고 하는 협상이 아닌 인도주의적 견지에서 이루어진 일종의 「외교친선」행위였다는데 그 주된 이유를 둘수 있을 것 같다. 우리의 그 「외교친선」행위가 다른 나나가 아닌 중공이었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기묘한 해후를 잘 풀어 나가려는 자세가 있었고 중공으로서는 지난30년간 자의든 타의든 괴롭힘을 주어온 나라에 대해 신세를 지게됐다는 미안 감이 「후의에 감사한다」는 말을 몇백번이고 되풀이 하게 만든 것 같다. <유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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