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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른인가 아이인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10대 청소년은 수많은 신체적·심리적 변화를 경험한다. 일생에 몇번의 위기중 청소년기야말로 가장 큰 위기의 시기다. 기성인들은 이들이 이 어려운 고비를 성공적으로 넘길수 있도록 하려면 어떠한 교육적 환경을 만들어줘야 할까. 또 오늘날 이 척박한 문화풍토를 어떻게 일구어 이들의 교육의 장으로 만들 수 있으며, 이들에게 문화적 자생력을 키워줄 방도는 어떤 것일까. 「청소년의 달」 5월을 맞아 전문가와 현장인의 시각을 통해 10대교육의 문제점을 진단해본다. <펀집자주>
서울 D여중 3년 이모양은 평소 자신의 부모가 다른 부모에 비해 무척 세련되고 현대적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만큼 더많은 이해를 기대했으나 요즘 부모의 「지나친 보살핌」은「쓸데없는 참견」이라고 생각하며 곧잘 짜증을 낸다.
언제부턴가 가슴속에서 이양이 부모에게 하고싶은 말은 『이제는 나를 믿어주세요. 혼자서도 잘잘못의 기준을 알수있어요. 이젠 속이 훤해서 언제 어떤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도 알고 있단말예요』-.
서울 B고3년 김모군은『요즘 가족이 한집에 살고는 있으나 항상 따로 따로 생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면서 『친구들의 대부분이 어떤 문제에 대해 부모와 선생님보다는 친구들에게 얘기하여 해결책을 구하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어른들과 대화를 한다해도 아예 기대하지 않고 하는 대화는 서로에게 아무런 이해도 도움도 줄수 없다고 말했다.
서울 M고 3년생들에게 기성세대들에게 하고싶은 말이 없느냐고 물어보았다.
『요즘 나이 16∼19세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모두 성장했다고 볼수 있는 나이인데 너무 어린애 취급을 하는것 같아요』
『「우리가 자랄때는…」「우리가 너희만할 때는…」하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적잖은 거부감이 생겨요. 기성인들은 자신의 경혐과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 있으면 우선 부정하려는 선입견을 갖고 있어요』
『우리 의견은 건방지다느니, 무얼 아느냐느니 말하는 어른들이 많은데 우리10대로서는 정말 기분 나쁩니다. 왜 우리 의견이 무시돼야 하는지 모르겠어요』『그저 「안된다, 하지말라」란 말이 90%이상일 것입니다. 그러니 고민이 있어도 어쩐지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마음이 나질 않아요)』
『청소년을 청소년의 입장에서 보지 않고 자신들의 사고와 행동양식에 그저 맞추기만 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기성세대란 말에 어떤 반발감 같은것을 느껴요. 그들의 대부분은 우리 행위를 달갑지 않게 보고있고, 우리 의견을 경험부족이니, 사회를 아직 모른다느니 하며 무조건 일축해 버리는 경우가 허다해요.』
『우리 학생들에겐 쉴 공간이 없습니다. 우리도 사람인 이상 모든 시간을 공부만 할수는 없습니다. 휴식공간이 필요해요. 우리에게 건전한 휴식공간을 마련해 준 다음 규제하는 것이 마땅할 것입니다』
『기성세대는 교육에서도 경제원칙을 적용하려는 것 같아요. 우리에게 해주는 것은 별로 없고 요구사항은 너무나 많습니다. 1년동안 선생님과 대화도 별로 할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정서함양과 인격도야를 할수 있겠읍니까』-.
오늘날 우리나라 교육계는 학교담이 무너지고 사회전체가 교실화되는 변혁의 시대를 맞고 있다. 교육은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언제 어디서나 일어나게 됐으며 정규교육과 비정규교육을 갈라놓던 두터운 벽은 허물어지고 있다.
이 시대를 맞아 어론들은 언제까지 『우리가 너희만할 때는 그렇지 않았다』는 무책임하고 비교육적인 말로 세월을 보낼것인가.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시급하고 긴요한 일은 「청소년」의 개념을 새롭게 재정립하는 작업이며, 이는 급변하는 사회구조에 기인한다.
현재 우리나라 중학진학률은 90%를 넘으며 고교진학률도 80%에 달하고 있다. 결국 거의 모든 10대인구가 적어도 중등교육을 받게 됐으며 누구나 대중매체와 접촉하면서 청소년기를 보내게 됐다.
현재 8백만대에 육박하는 TV수상기를 비롯, 광범위한 대중매채의 보급은 전인구를 대중문화권에 편입시키고 있다. 이제 인기가수나 배우의 이름, 유행가 따위는 노소의 입을 함께 오르내리고 있으며 프로권투나 프로야구는 어른들만의 중요 관심사가 아니다.
모두가 공유하는 대중문화다. 여기에 전혀 새로운 청소년세대가 생겨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임희섭교수(고러대·사회학)는 이렇듯 대중사회적 성격을 띠어가는 한국사회에서 기성세대는 더이상 틀에 박힌 엘리트주의적 청소년관을 고집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대부분의 청소년들은 자신을 수많은 평범한 청소년 가운데 한사람으로 믿고 살아가고 있을 뿐인데, 기성세대가 모든 청소년을 미래의 엘리트라며 무거운 기대를 강요하면서 이러한 엘리트 주의적 청소년 상에서 벗어나는 청소년들에겐 실망하는 따위의 행태는 버려야 한다는 것.
자신이 장래가 촉망되는 선택된 소수라는 강요된 환경속에서 학교를 다니는 대부분의 평범한 청소년들은 부당하게 가정과 학교와 사회로부터 차별, 소외되고 있다.
30%의 고졸자만이 대학에 진학하는 오늘날의 한국사회에서 그렇지 못한 70%의 대다수 학생들은 이미 실패자나 낙오자라는 낙인이 자신도 모르게 찍히고 만다는 것.
결국 많은 청소년들은 중압감과 열등감만을 일으켜주는 가정과 학교를 외면하고 비슷한 입장의 다른 청소년과 어울려 그들 나름대로의 생활양식과 보람을 찾으려고 한다고 임교수는 지적했다.
이와함께 권위주의적 집합주의적 물질주의적인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평등주의적·개인주의적·인간주의적인 청소년 세대의 가치관의 진지한 수렴도 과제로서 제기될 문제다.
『아직도 아이들』이라고 생각하는 부모, 『이제는 어른』이라고 맞서는 10대. 이러한 대치관계야 말로 우선적으로 해소돼야 할 10대의 교육문제가 아닐까. <이근성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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