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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카에다·IS, 극단·선명성 경쟁 … 글로벌 테러 확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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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9호 04면

프랑스 파리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는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일으킨 것일까? 범인들이 사살되고 구체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현재까지의 정황으론 알카에다와 이슬람국가(IS)가 배후에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알카에다 아라비아반도지부(AQAP)는 현재 종파 분쟁과 분리주의로 몸살을 겪고 있는 예멘을 근거지로 하고 있으며, 자신들이 알카에다의 원류임을 주장하고 있다. 본디 알카에다 본부는 아프가니스탄을 거점으로 오사마 빈 라덴의 직접 지휘하에 있었지만 테러와의 전쟁 국면을 거치면서 현격히 약화되었다.

샤를리 에브도 사태 통해 본 이슬람 테러리즘의 변화

본부는 부실해졌지만 대신 새로운 현상이 나타났다. 중동 전역에서 알카에다의 이념에 동조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집단을 결성, 나름대로의 규율을 갖고 활동하면서 지역별로 알카에다의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일종의 프랜차이즈가 형성된 셈이다. 알카에다 본부(AQP)를 비롯해 아라비아반도(AQAP), 이라크(AQI), 북아프리카(AQIM) 등 역내 혼돈 지역을 거점으로 자생력을 갖춘 지역 네트워크 테러집단으로 변형된 것이다. 위계 구도가 아니다. 본부의 직접 지휘 통제에서 벗어나 자발적이고 자율적으로 테러를 기획, 실행하고 있다. 이번 테러와 연관된 것으로 보이는 세력은 이른바 제3세대 이슬람 테러리즘의 본류라 할 수 있다. 즉 네트워크와 프랜차이즈의 성격을 갖는 테러리즘이다.

IS, 알카에다보다 더 폭력적
주목할 점은 이들 지역별 알카에다 방계세력, 이른바 프랜차이즈 알카에다와는 완연히 다른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이 등장했다는 사실이다. 바로 IS다. 원래 알카에다 이라크(AQI)의 일원이었던 IS는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의 혼란 국면을 거치면서 알카에다와 분리되었고 훨씬 더 폭력적인 양태를 나타내고 있다. 이들은 아예 이라크와 시리아 일부 지역에서 이슬람 법에 의해 운영되는 신정주의 칼리프 국가를 선포했다.

이들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등의 뉴미디어를 활용해 전 세계 각처의 자생적 지하디스트를 모집하고 있다. 불만의 시대, 박탈감과 분노를 가진 젊은이들에게 극단주의는 묘한 매력을 나타낸다. 비록 소수이지만, 극단주의 그룹에 열광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아예 직접 시리아로 들어가 IS에 가담하는 소위 해외 테러전사들도 90개국에서 약 2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념과 사상을 공유하고 있지만, 자생적 지하디스트를 끌어들이는 맥락에서 알카에다와 IS는 최근 일종의 경합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히려 이슬람 테러의 본류임을 자처하던 알카에다 세력은 IS의 발호로 인해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이를 만회하고자 하는 다양한 움직임이 최근 포착되고 있다. 아직 확언하기는 이르지만, 이번 샤를리 에브도 테러도 AQAP의 이런 확장전술로 해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따라서 우려할 만한 점은 이들 알카에다와 IS가 상호 경합구도 속에서 선명성·폭력성·극단성 경쟁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누가 더 폭력적인가를 경쟁하는 과정에서 이들이 글로벌 테러를 본격적으로 실행하게 되면 전 세계는 극도의 혼란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다. 심상치 않은 상황이다.

대다수 무슬림은 테러에 반대
무참한 살상에 대한 전 세계의 비난이 쇄도하고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의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테러리스트들은 이슬람을 악랄하게 모독한 만평의 주역들을 응징했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즉 이들이 무고한 시민들을 죽인 것이 아니라, 악에 대한 강력한 대응 차원에서의 옳은 일이었다고 강변하는 것이다.

실제로 예언자 마호메트를 비하하는 만평은 많은 무슬림에게 불편하기 짝이 없는 것이었다. 일종의 도발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무슬림들은 이를 죽음으로 응징하는 테러리스트들의 논리에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테러리스트의 만행은 결코 이슬람이 용인하는 바가 아니며, 광기에 사로잡힌 극단주의자들의 행동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이 사건이 유럽 내 무슬림 공동체에 대한 반감으로 연결되는 순간 더 큰 갈등과 분쟁이 시작된다는 점을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선량한 대다수의 무슬림에게 이번 사건이 더 아프고 더 안타까운 이유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지 않다. 소수이지만 소위 ‘외로운 늑대들’(lone wolves) 즉, 이번 테러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무슬림들이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이들이 언제 행동으로 나서게 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유럽 내 무슬림 인구는 지난 20년 동안 무려 50% 가까이 늘어났다. 그러나 유럽의 무슬림들은 미국과는 달리 사회 전체에 고루 흩어져 파고들지 못한 채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독자적인 공동체를 형성하며 살아가고 있다. 영국의 경우 주로 파키스탄·방글라데시 이민 계열이, 프랑스는 북아프리카 마그레브 출신 무슬림들이 주류다. 반면 독일은 주로 터키계 무슬림 공동체가 큰 편이다. 각기 사회의 주류에서 활약하는 대신 별다른 직업 없이 끼리끼리 모여 살던 이들 무슬림 청년에게 박탈감이 쌓이기 시작하면 자칫 극단주의에 경도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2등 시민으로 살아가는 패배의식과 열등감은 분노로 치환될 수 있다. 이들에게 예언자를 비하하는 만평은 분노를 격발시키는 방아쇠에 다름 아니다.

특히 프랑스의 경우 전체 인구의 10%에 가까운 600여만 명의 무슬림들이 살아가고 있다. 타자에 대한 관용, 즉 톨레랑스(tolérance)의 미덕으로 유명하고, ‘자유·평등·박애’의 혁명사상을 언필칭 자랑하는 프랑스이지만 사실 여타 유럽 국가보다도 더 무슬림 이민자들의 박탈감과 소외감이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2005년 가을, 파리 외곽에서 일어난 폭동은 언제든 이들 무슬림 젊은이가 정치적 불만을 표출하며 거리에 나올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사례다. 불만을 가진 무슬림 젊은이들이 경제난·구직난 등의 현실에 희망을 둘 여지가 별로 없기에 삶의 의미를 배타적인 종교 교의에서 찾기 시작한다. 극단주의의 토양이다. 이들이 그간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살아오다 거룩한 이슬람 공동체를 위해 생명까지도 불사할 수 있다는 ‘사명 의식’을 획득하면서 성전의 전사, 지하디스트로 변신하게 되는 것이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이슬람을 위한 투쟁에서 찾기 시작한다.

이와 맞물리는 또 다른 우려는 유럽 내 극우주의의 발호 가능성이다. 극우주의자들은 극단주의 테러를 목격한 대중들에게 이슬람 공포증을 전파하고 있다. 이를 통해 반이슬람 정서를 확산시키고 자신들의 정치적 이익을 극대화하고 있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극우세력 국민전선을 이끄는 마린 르펜 당수는 기다렸다는 듯 이제 이슬람과 공존할 수 있다는 가식을 벗어버릴 때임을 선포했다. 독일의 반이슬람화 운동인 페기다(Pegida·서구의 이슬람화를 반대하는 애국적 유럽인)도 한껏 목소리를 높였다. 이러한 극우파의 논리는 점차 북구 및 서구 다수 국가로 확산되고 있다. 이미 프랑스 국민전선의 경우 지지율이 20% 내외에 이른다. 이민 반대 및 심지어 무슬림 추방까지 운위하는 이들 극우파의 목소리가 높아질수록 유럽 내 무슬림 공동체의 반감도 함께 높아져 이슬람 극단주의자를 양산시킬 수 있다. 결국 평화를 희구하는 선량한 다수가 극우파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에 의해 고통받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극단주의 간의 싸움은 전체 사회를 병들게 하고 분노를 양산시키기 때문이다.

‘외로운 늑대’들 테러 시한폭탄
테러와의 전쟁은 이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지난 10여 년간 알카에다를 무력화시키고, 오사마 빈 라덴만 사살하면 이슬람 테러는 어느 정도 약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어왔다. 나아가 미국은 막대한 전비와 인명피해를 감수하면서 테러를 지원하는 국가들에 대한 전쟁도 수행했다.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이었다. 그러나 현재 이슬람 테러리즘은 더 강력한 이념과 정밀한 논리를 갖춘 운동으로 변화하고 있다. 본래 알카에다보다 훨씬 더 폭력적인 IS가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아예 국가 수립을 선포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다. 기존의 알카에다 역시 더욱 다양하고 복잡하게 분기하는 중이다. 이제는 이들을 하나하나 추적하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전 지역에 산개(散開)하여 대중들에게 침투하고 있다.

이제는 미국이 주도하고 국제사회가 먼발치에서 따라가는 기존의 대테러전으로 갈 수는 없다. 극단주의의 시대에는 어느 국가든, 또 개인 누구든 테러의 목표가 될 수 있다. 한국 역시 자유롭지 않다. 언제든지 극단주의의 테러 목표가 될 수 있다. 명분이 아닌 실제적인 국제공조가 시급하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전쟁이나 주요 세력 거점 타격, 또는 핵심 인사를 추적해서 없애는 것만으로 테러리스트를 궤멸시킬 수 없다는 사실이다. 대증요법과 더불어 원인 치료가 필수적이다. 극단주의를 양산하는 빈부격차 및 저개발, 다문화사회의 박탈감, 타 종교에 대한 몰이해 등 구조적 원인을 찾아 함께 해결해보려는 노력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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