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책 속으로] '저출산 코리아' 나쁘지만은 않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2면

리비아에서 일하는 니제르인 수백 명이 트럭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리비아 국경지역에서 출발, 2500㎞ 거리를 이렇게 이동한다. [사진 Roberto Neumiller]

인구 쇼크
앨런 와이즈먼 지음
이한음 옮김, RHK
660쪽, 2만원

“저출산이 정답이다.”

 세계에서 출산율이 가장 낮아 인구 감소를 걱정하는 한국에 이 책의 주장은 약간 생뚱맞게 들린다. 하지만 저자는 전세계적으로 보면 인구 급증으로 인한 재앙이 닥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유엔에 따르면 현재 4, 5일마다 인구가 100만 명씩 늘고 있다. 지난해 72억 명을 돌파한 지구촌 인구는 2082년 100억 명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인구는 20만 년 동안 거의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다가 역사의 마지막 0.1% 기간 동안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인구 증가 속도가 인류가 대비할 수 없을 정도로 가파르다는 것이다. 이 책은 세균 증식에 비유해 인구 증가를 경고하고 있다.

 “어느 세균이 1분마다 둘로 나뉘어 증식한다고 칩시다. 오전 11시에 병안에 세균 한 마리를 넣었는데 12시가 되니 병에 세균이 꽉 찼습니다. 그러면 세균이 병의 절반을 채우는 시점은 언제였을까요? 답은 오전 11시59분입니다.” 1분 만에 병이 세균으로 꽉 차기 때문에 세균을 새로 증식할 병을 구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저자는 뉴욕타임스 등에 글을 기고해온 저널리스트답게 21개국을 돌아다니며 취재한 풍부한 사례로 인구 쇼크의 실상을 보여준다. 이미 인구 과잉은 지구촌 곳곳에서 환경 파괴, 물·식량 부족, 에너지 고갈 등 재앙을 일으키고 있다.

저자 앨런 와이즈먼. [사진 RHK]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 다투고 있는 가자지구·서안지구엔 현재 1200만 명이 밀집해 살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직후 이 곳을 통치한 영국은 이 땅에 기껏해야 250만 명 정도가 살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문제는 유대인 근본주의자와 팔레스타인인 사이에 ‘출산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전쟁·테러로 죽는 가족·친척들이 많자 아이들을 더 낳기 시작했다. 팔레스타인해방기구 지도자 아라파트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자궁이 자신들의 최고 무기”라고 말했다고 한다. 좁은 지역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환경 파괴가 심각하다. 가자 지구 우물의 90%는 분뇨·오수와 바닷물이 나올 정도로 오염됐다. 2020년엔 모든 이스라엘인이 재활용된 하수를 마시거나, 그 물마저 모자랄지 모른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다.

 강력한 산아제한 정책으로 인구 증가세가 주춤해진 중국도 심각하긴 마찬가지다. 중국의 인구정책을 입안한 주역은 인구통계학자가 아니라 미사일 과학자들이다. 문화혁명 때 지식인들을 전부 숙청하는 바람에 복잡한 수학 추계를 할 수 있는 인력이 미사일 전문가들밖에 없었다고 한다. 이들은 중국의 적정인구를 7억 명 정도로 보고 한 자녀 정책을 밀어붙였다. 증가세가 둔화되긴 했어도 현재 14억 명으로 추정되는 중국 인구는 관성에 의해 당분간 늘어나게 된다.

 숲 파괴, 물·식량 부족, 동식물의 멸종 등은 인구가 급증한 나라에서 공통으로 겪는 재앙이다. 파키스탄은 70년 전엔 국토의 3분의 1이 숲이었지만 지금은 4%밖에 안 된다고 한다. 숲이 파괴되니 지하수도 고갈되고, 비옥했던 농지도 메말라가고 있다. 농민들은 지하수를 더 깊게 파느라 빚을 지고, 이 때문에 자살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사실 한국은 인구감소라는 정반대의 고민을 하고 있다. 일본처럼 저출산-생산가능인구 감소-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겪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다. 하지만 저자는 한국의 독자들에게 보낸 서문에서 인구 감소가 오히려 사람들을 더 풍족하게 만들 것이라고 반박한다. 일본의 인구경제학자 마쓰타니 아키히코 교수의 주장에 따르면 국가의 GDP가 감소하더라도 1인당 소득은 줄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인구가 줄어들수록 노동력이 더 귀해지기 때문에 임금은 올라가고 근무시간은 줄어드는 등 개인의 삶은 더 나아진다는 전망이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앨런 와이즈먼의 분석은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가난하고 열악한 국가일수록 아이들을 많이 낳는다. 환경파괴엔 국경이 없기 때문에 지구촌 전체에 재앙이 확산될 수 있다. 이 책은 “생물의 역사에서 자원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개체수가 불어난 종들은 모두 개체군 붕괴를 겪었다”고 말한다. 인간들은 해산물을 얻기 위해 바다 밑바닥까지 박박 긁고, 수확량을 위해 땅에 화학물질을 뿌려대며, 연료를 얻기 위해 암석을 부숴 쥐어짜고 있다. 그 결과 땅은 척박해지고 지하수와 강은 메말라가고 있다. 자연이 감당할 수 있으려면 결국 인간의 개체수를 줄여야 한다는 결론이다.

 “내 세계를 더럽히거나 파괴하지 않도록 주의하거라. 그것을 파괴하면 네 다음에 복구할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의 성서해석서 『미드라시』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책이 그리는 지구의 미래는 영화 ‘인터스텔라’와 가깝다. 인간의 잘못으로 환경이 망가져 모래폭풍과 흉년으로 종말을 맞이하는 지구 말이다. 그래서 “인간이 스스로 못하면 자연이 우리를 대신해 인구를 조정할 것이다”는 저자의 경고는 섬뜩하다. 인류가 인구 증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지구는 저자의 전작 『인간없는 세상』처럼 될지 모른다.

저자 앨런 와이즈먼. [사진 RHK]

정철근 논설위원 jcomm@joongang.co.kr

[S BOX] “출산율 0” 극단적 운동도

‘자발적 인류멸종운동(VHEMT·Voluntary Human Extinction Movement)’이란 단체가 있다. 2001년 미국인 레스 나이트가 창립했다. 인류가 다른 수많은 종(種)과 더불어 자기 자신까지 멸종으로 내몰 만큼 이미 자연을 파괴해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인간의 번식을 중단하는 것만이 남아있는 유일한 윤리적 대안이라고 말한다.

 다만 물리력을 동원한 대량살상이나 자살 등을 부추기는 것은 아니다. 그 대신 엄격한 피임을 내세운다. 출산율을 0에 가깝게 낮추고, 아이를 기르고 싶으면 저개발국가 아동을 입양하자고 제안한다. 일종의 극단적 처방이다. 이들의 모토는 ‘오래 살고 사라지자(May we live long and die out)’다.

 『인구 쇼크』의 저자 와이즈먼은 이들의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인류는 “엄청난 문제를 일으키는 동시에 경이로울 만치 아름다운 것들도 만들어내는” 존재라고 보기 때문이다. 아이를 더 이상 낳지 말자는 VHEMT의 급진적 계획과, 계속 인구를 늘리고자 하는 인류의 행동 사이에서 중용을 찾을 필요가 있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