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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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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14, 15, 16, 17, 18, 19. 대구 디스코 클럽
「초원의 집」화재에서 다친 10대들의 나이다.
남고생 12명, 여고생 3명. 그밖에도 공장직공, 어느 식당 종업원도 포함되어 있다.
요즘 디스코 클럽 출입자들의 면면을 눈감고도 알 수 있다.
화상 사망 10명, 무외상 사방 15명. 화재 이후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불길속에 군자가 따로 없겠지민, 이 3대2의 비율은 사회심리학의 분석자료가 될만하다.
위기에 직면하며. 그 순간 사람들은 난중으로 돌변하고 만다.
생명을 걸어 놓은 상황에서 불가피한 현상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정도가 좀 지나친 것 같다.
학교 교문을 일시에 빠져 나오던 어린이들의 참사, 계단을 밀려 내려가던 군중들의 압사.이것은 우리가 이미 보아온 일들이었다.
대구 디스코 클럽 화재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현장 아래층에선 똑같은 불길 속에서도 회생자가 적었다.
그나마 누군가에 의해 질서가 지켜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소방훈련」으로 알고 있었다고 한다.
꽤 위기 관리에 약할까. 한마디로 잠재적인 피해의식이다.
줄서기를 할때 맨뒤에 서면 틀림없이 불리하다는 생각. 나 혼자만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 나의 부리고 온 내 탓이기보다는 남의 탓이라는 자기 부재 의타성.
이것이야 말로 나의 탓이기보다는 사회의 탓이 더 많을 것 같다.
정직하게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예외없이 불이익이 돌아가고 만다.
차표를 살 때도, 아파트를 살때도 번번이 그런 경우를 보아 왔다.
순리보다는 강령이 미덕으로 통하는 사회. 8대 17.
이것 또한 불명예의 비율이다.
희생자 가운데 여자가 17명, 남자가 8명. 생리적으로 남자쪽이 더 공격적이고 활동적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자 70%의 희생은 너무 봉조적이다.
지난해 1월 미국 워싱턴시의 퍼토맥강 비행기 추락사고 때의 광경이 생각난다.
얼음물 속에서 자신의 안전은 둘째치고 노인과 부녀자룔 먼저 구출한 어느 미국시민이 있었다.
그는 나줌에 백악관에 초대까지 받았지만, 결코 유명인이 아니었다.
평범한 시민일 뿐이었다. 아마 그가 그 위기의 순간 매스컴의 각광을 받는 영웅적 야심이있었다면 그런 위험은 포기하고 말았을 컷이다.
물론 그것은 그 한사람의 인격에 국한된 얘기지만, 이런 심리적 건전성이야말로 그사회의 뿌려를 튼튼하게 만든다.
끝으로 빼놓을 수 없는 얘기가 있다.
문제의 디스코 클럽은 미성년자 출입금지 지역. 성년의 나이는 분명히 20세다.
게다가 불과 1m20㎝의 좁은 출입구 통로 45도의 가파른 계단. 여기를 2백여명의 사람들이 불길에 쫓겨 통과했을 장면은 상상만 해도 질식할 것 같다,
우리는 또 다시 우리 사회의 어느 단면을 본 충격을 숨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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