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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이버1개로 6개월간 5억털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14일 탈주한 조세형(38)은 「대도」란 별명이 어울리는 「절도계의 마술사」였다.
훔친 액수가 6개월에 5억5천여만원어치로 기록적이고 단독범행으로 14차례시도에 11차례나 성공해 80%이상의 성공률(?)을 갖고있다.
9개의 별(전과9범)이 모두 절도였고 복역한 통산기간이 16년으로 나이의 절반쯤을 교도소에서 지냈다.
1m75㎝쯤의 알맞은 키에 태권도5단의 체력은 그의 「도둑업」을 뒷받침하고 서전트 점프 80㎝는 배구선수를 능가하는 것이어서 담을 넘는데 안성마춤. 노련한 경험으로 조의 도둑질은 여러가지의 특징이 있다.
첫째는 유명인사집만 대상으로 했다는 것, 유명인사들은 웬만큼 도둑을 맞고도 「유명세」때문에 신고를 제대로 하지않고 보안에 신경을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 조가 범행한 곳은 전국회의원 신모·김모씨집과 유명화장품회사 전무·정부고관·기업체사장집등이 대부분으로 명륜동·이화동·성북동·서교동등 강북의 고급주택가를 누볐다.
수법은 철저한 낮털이 단독범행. 고급주택일수록 밤보다 낮의 경비가 허술하고 공범이 있으면 꼬리가 잡히기 쉽기 때문이다. 또 교도소 생활중 보석상인 감방동료로부터 보석감정·세공기술을 익혀 조가 혼자서 장물처분까지 전과정을 해낼수있는 능력을 갖추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사용되는 도구는 크기 40㎝쯤의 대형드라이버1개와 못뽑는 쇠연장(일명 빠루)l개뿐이다.
담을 넘어 안방 창문을 뜯고 들어가 현금 귀금속을 챙기는 시간은 20분.
그는 범행시간을 철저히 지켜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마감시간」이 지나면 챙기지 않는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또 범행중 들키면 금품을 몽땅 포기해 놔두고 달아나는 것도 특징. 유명인사들은 금품을 잃지 않으면 신고를 거의 절대적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알기 때문이다.
조는 지난1월 재판장에게 보낸 장문의 탄원서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범죄대학원인 교도소에서 절도과(과)를 전공하여 현재는 대가가 되었다.』
어렸을때 부모를 여의고 유년기를 보육원에서, 소년기는 소년원에서 보낸 조는 국민학교도 다녀보지 못했지만 독학으로 고졸이상의 학력을 갖췄다고 스스로 쓰고 있다.
지난해 3월 7년의 옥살이에서 출감한 조는 대학을 졸업한 이모씨(34·음악학원강사)를 술집에서 사귀어 서울반포본동 32평짜리 아파트에서 살림을 차렸지만 이씨는 조가 지난해 11윌 검거될때까지 도둑인줄은 전혀 모르고 부잣집아들인줄만 알고 있었다는 것. 당시 조의 아파트에 있는 2개의 대형 금고안에는 보석상이 무색할 정도의 귀금속이 들어 있었고 포니승용차와 1백25㏄ 오토바이를 굴리며 한달 생활비가 1천만원쯤이나 됐었다고 알려지고 있다.
검거된 조는 1억원어치의 귀금속을 밀수품이라고 속여 처분했고 70%쯤을 갖고있다 압수됐다고 자백했으나 4억원어치를 금고속에 보관했던 셈.
지난해 조가 검거된 것은 75년 조를 검거한 동대문경찰서 윤남구경사(50)에 의해서 였다.
윤경사는 관내인 이화동에서 전 국희의원 신모씨집에서 물방울다이어(5.75캐러트)등 1억2천만원어치의 귀금속 도난사건을 수사하면서 범행수법이 똑같은 것을 보고 조의 범행임을 직감, 6개윌간 추적했던것.
윤경사에게 검거된후 조는 『형님이 동대문서에 계신줄 알았으면 그쪽지역은 안털것을 잘못했다』며 모든것을 순순히 자백했다.
재판을 받으면서도 조는 온갖 살아날 길을 모색, 최후진술을 서면으로 제출하는등 꾀를 부렸다.
그는 최후진술에서 『지금까지 저는 모범적인 수형생활로 일관했으니 재생의 길을 열어달라』고 했는가 하면 『피해자들이 압력을 가해 피해액이 줄어들고 신분을 감추기 위해 피해자가 둔갑한 것도 있다』고 비꼬기도 했다.
조가 탈주하자 관계기관에서는 동거하던 이씨가 일본·동남아등을 관광비자로 자주 드나들었다는 점을 밝혀내고 조가 이와 접선, 밀항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보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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