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역 이 사람!] 농활 여대생 출신 농사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서현정씨(右)가 유기농 쌀로 손수 만든 떡 케이크를 들어보이고 있다. 정읍=양광삼 기자

전북 정읍시 칠보면 축현리 서현정(36)씨는 요즘 하루 평균 100~200모씩 두부를 만든다. 두부는 인근 농민들이 재배한 콩을 구입해 갈기→끓이기→나무틀에 넣어 누르기 등 대부분의 작업 과정을 일일이 손으로 한다. 100% 국산콩을 사용한 데다 첨가제를 넣지 않아 색깔이 뽀얗게 살아 있으면서 맛이 부드럽고 고소해 인기다.

서씨는 농약.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농산물 생산에 앞장서는 한편 두부.떡 등을 만들어 생활협동조합 등에 제공하는 '우리 먹거리 지킴이'다.

그는 울산시 울주군 한 산골마을 출신. 10세 때 이사, 초.중.고.대학을 모두 서울서 마친 '도시 처녀'가 '시골 아낙'으로 변신한 것은 대학 4년 때의 농촌 봉사활동이 계기가 됐다. 후배들과 함께 이 마을로 농활을 나왔다 농사꾼인 남편 박창주(40)씨를 만난 것이다. 집안의 극심한 반대를 무릅쓰고 만난 지 4년 만인 1997년 결혼한 서씨 부부는 한때 임대를 포함해 논 100여 마지기를 지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다. 마을의 첫손 꼽히는 '대농'인 이들이 친환경 농업으로 방향을 튼 것은 4년 전이다.

"농약을 치고 나면 며칠씩 시들시들 앓아 눕곤 했어요. 마침 도시생활을 접고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귀농자들이 '병 들어 가는 농촌을 살리고, 아이들을 위해 생태농업을 하자'고 제의해 의기투합했죠."

서씨 부부는 논을 10마지기로 줄이고 3000여 평의 야생 차밭을 조성해 친환경 농업을 시작했다. 귀농자 가족 5가구와 함께 생산한 무공해 쌀과 채소.호박.고사리 등은 유기농 직거래 장터인 '한살림' 매장을 통해 도시민들에게 불티나게 팔려나간다.

서씨는 특히 정읍 지역 유기농 생산자 모임의 총무를 맡아 농민과 도시 소비자를 연결하는 다리역할을 하고 있다. 도시민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정월 대보름.추수기 등에는 쥐불놀이.달집태우기.지신밟기.풍물놀이 등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철이 바뀔 때마다 도시.농촌 어린이들을 이끌고 문화유적지 탐방을 다니는가 하면 백제음식 차리기, 꽃 비빔밥 만들기, 화전 부치기 등 행사를 주도한다.

최근에는 우리 전통음식문화 살리기 차원에서 떡 보급 운동을 벌이고 있다. 시루떡.떡 케이크.양갱 등 제조법을 이웃에게 보급하는 한편 직접 만들어 학교.유치원 등에 공급하고 있다.

서씨는 "도시민들이 아무 때나 들러 고향집 같은 정겨움과 포근함을 느끼며 쉬어 갈 수 있는 생태 농촌마을 공동체를 만드는 데 앞장서겠다"고 말했다.

정읍=장대석 기자 <dsjang@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yks2330@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